낸드플래시는 노트북 PC·스마트폰 속에서 전자기기가 꺼지더라도 정보를 반영구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반도체다. D램과 함께 대표적인 메모리반도체로 꼽힌다.
최근 생산되는 낸드플래시는 수백억 개의 데이터 기억 공간이 마치 아파트처럼 세로로 쌓여 있다. 이 기억 공간을 만들려면 제품 최상단부터 바닥을 관통하는 ‘채널 홀’이라는 구멍을 뚫어야 한다.
업계에서는 채널 홀이 골칫덩이다. 낸드플래시의 단수가 증가할수록 이 구멍을 주어진 시간 안에 제대로 파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구멍이 공정 중간에 지팡이처럼 구부러져 바닥까지 닿지 못하거나 두께가 일정하지 않아서 불량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낸드플래시 단수가 100단이 넘어가면서 제조사들은 구멍을 나눠 뚫은 뒤 결합하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다만 공정을 세분화할수록 양품률이 올라가는 반면 시간과 비용은 크게 올라간다는 단점이 있다. 생산성과 원가 절감 전략에 적잖은 타격이 있다는 의미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수요 부진 상황에서 비용 증가는 낸드 제조사의 이윤에 치명적인 부담을 안긴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9세대 낸드 ‘더블 스택’ 공정 채택은 경쟁사보다 원가를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실 삼성전자가 낸드플래시 업계에서 혁신을 주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2019년 6세대 128단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때 채널 홀을 단 한 번에 뚫는 싱글 스택 기술을 완성했다. SK하이닉스·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경쟁사들이 동급 100단 낸드 플래시에 더블 스택을 적용했을 때 유일하게 한 번만에 낸드를 완성하는 기술로 기술 리더십을 뽐낸 것이다.
그동안의 낸드플래시 영업이익률을 살펴 봐도 삼성전자의 공정 기술이 원가 절감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호황이 극에 달했던 2021년 3분기 낸드 사업에서 32%의 낸드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일본 기옥시아,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경쟁사들이 20% 중반대 마진율을 기록한 것에 비해 큰 이익을 남긴 셈이다.
삼성전자는 내년 양산 예정인 9세대 300단 낸드 이후 출시할 10세대 낸드플래시 제품 양산에는 ‘트리플 스택’을 적용할 예정이다. 스택 수는 경쟁사와 같지만 이 가운데서도 원가를 낮출 수 있는 혁신적 공정 개발을 선점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기존 채널 홀 뚫기와는 공정 콘셉트가 아예 다른 ‘극저온 식각’, ‘펄스 직류(DC)’ 기술을 도쿄일렉트론(TEL) 등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협력사와 함께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소재 업체 중에서는 티씨케이(064760)·하나머티리얼즈(166090) 등이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백길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앞으로 TEL 등 국내외 장비·소재 협력사와의 신규 식각 장비 협력으로 안정적인 스태킹 기술을 구현할 것으로 본다”며 “삼성전자 낸드 제품의 원가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분기 업황 부진으로 반도체(DS) 부문에서 4조 원대 적자를 내면서도 낸드 이외 다양한 메모리 제품의 혁신에 나서고 있다. D램 분야의 경우 최근 인공지능(AI) 시대 개화로 주목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역시 이 분야 점유율 1위 SK하이닉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날을 세우고 있다. 김재준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달 2분기 실적발표회를 통해 “HBM3 제품은 업계 최고 수준의 성능과 용량으로 고객 승인(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다음 세대 제품인 HBM3P 제품은 24기가바이트(GB) 기반으로 하반기 출시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