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복 입고 레드와인을 한 잔해, 두 사람을 위한 영화가 있지. 우린 핸드폰을 끄고, 신발을 벗고, 닌텐도를 할 거야.”
지난 11일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울려퍼진 영국 싱어송라이터 브루노 메이저의 노래 ‘나싱(Nothing)’.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뷔가 소셜미디어(SNS)과 라디오를 통해 거듭 추천했던 곡이다. 음원으로만 듣던 감미로운 목소리가 공연장을 부드럽게 에워싸자 관객들도 그의 노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번 공연은 전날부터 열린 브루노 메이저의 아시아 투어 ‘플래닛 어스’의 일환이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국내외 아티스트의 무대를 개최하고 있는 ‘원더월 스테이지’를 통해 10~11일 양일 한국을 찾았다. 원래 11일 하루에만 공연 일정이 정해져 있었지만 관객들의 높은 호응으로 10일에도 공연을 추가했다. 한국에서의 공연은 2018년 이후 약 5년 만이다. 2020년에도 내한 공연이 예정돼 있었으나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연기된 바 있다.
브루노 메이저는 지난달 3집 앨범 ‘콜롬보(Columbo)’를 발매했다. 콜롬보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격리 생활로 영국 노샘턴의 부모님 집에 머무르던 그가 자유로워지자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가 구매한 차다. 하지만 그 차는 사고로 그만 멈추고 만다. 그때의 감정을 녹여낸 결과물이 노래로 탄생한 것이 모여 새 앨범이 됐다.
3집 수록곡 ‘더 쇼 머스트 고 온(The Show Must Go On)’으로 공연의 포문을 연 브루노 메이저는 ‘라이크 섬원 인 러브(Like Someone In Love)’와 ‘페어 웨더 프렌드(Fair-Weather Friend)’, ‘우든트 민 어 싱(Wouldn’t Mean A Thing)'을 잇따라 선보였다. 빨간 수트를 입고 기타를 멘 그는 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다가도 화려한 기타 솔로를 연주하며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과 한국 사람에게 사랑에 빠졌다”면서 “어젯밤에도 공연을 했는데, 태풍이 몰아치는데도 와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곡도 새롭게 관객에게 들려줬다. 부드러운 사랑 노래에 정통한 것으로 유명한 브루노 메이저지만 코로나19 시기 고독과 단절을 겪은 후에는 새로운 결의 노래를 발표하며 음악 세계를 확장했다. ‘콜롬보’를 부르면서는 “코로나19 때문에 처음 무대에서 연주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키보드에 앉아 직접 반주하며 감미로운 목소리에 힘을 싣기도 했다. 밴드의 키보디스트와 함께 키보드를 연주하며 즉흥 연주도 선보였다.
브루노 메이저는 대표곡 중 하나로 꼽히는 ‘나싱’을 부르면서 “여러분의 힘이 필요하다”면서 “노래에 별에 대한 가사를 썼는데, 여러분은 어느 곳에서도 별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건넸다. 그의 말을 들은 관객들이 하나둘씩 휴대폰의 플래시 라이트를 켜자 삽시간에 공연장이 환하게 밝아졌다. “누가 별이 필요하겠어/ 우리에겐 지붕이 있는데”라는 가사처럼 아름답게 별무리가 진 듯했다.
이날 ‘위 워 네버 리얼리 프렌즈(We Were Never Really Friends)’를 끝으로 정해진 공연을 마친 브루노 메이저는 앵콜곡으로 ‘이질리(Easily)’를 부르며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나싱’만큼이나 인지도가 높은 곡을 부르자 관객들도 여운에 잠겨 호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3년 반만의 공연 중 (한국에서의 공연이)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면서 “나는 분명히 서울로 돌아올 것이다.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에서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낸 브루노 메이저는 이어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등 아시아 투어를 마치고 다음달부터는 미국 순회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독일, 프랑스 등 유럽 투어를 여는 그는 11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