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가 잎, 종자 등에 항암·진통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관상용이 아닌 마약용 양귀비를 기르다가 처벌받는 사례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6월 강원 고성군 한 주택가 텃밭에서 양귀비가 대량으로 발견된 일이 뒤늦게 알려졌다. 평범한 시골 마을에서 경찰이 수거한 양귀비의 양은 700주에 달했다.
경찰이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성분 분석을 의뢰한 결과 해당 양귀비는 관상용이 아닌 마약용으로 확인됐다.
마약용은 줄기가 매끈하고 잔털이 없으며 열매가 둥글고 큰 데 반해, 관상용은 줄기에 전체적으로 짧은 털이 나 있고 열매가 작은 도토리 모양이다. 꽃도 검은 반점이 있는 붉은색이다.
텃밭에서 양귀비를 기른 80대 주민 A씨는 결국 마약류관리법 위반 피의자가 돼 이달 초 검찰에 넘겨졌다.
또 같은 달 춘천 한 초등학교 인근 주택 두 곳에서도 양귀비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양귀비를 기르던 80대 노인들은 경찰 조사에서 "고기에 쌈 싸 먹으려고 길렀다"거나 "배앓이 치료 목적으로 기른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신경통, 배앓이, 불면 등 노인성 질환을 달고 사는 고령층이 병원에 가는 대신 텃밭 등에서 몰래 양귀비를 기르다가 적발되는 경우가 잦다. 농촌 일각에서는 가축의 설사 증세 등을 완화에 양귀비가 효과적이라는 입소문도 퍼져 있다.
그러나 양귀비는 강한 중독성을 지녀 환각작용, 중추신경 마비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아편과 헤로인의 원료로도 쓰여 허가 없이 재배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섭취하거나 유통하지 않고 기르기만 해도 처벌 대상이기에 전과자 신세로 전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단 1주만 재배하더라도 고의성이 입증되면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실제로 2021년 6월 경기도 포천시 한 주택 앞 화단에서 마약용 양귀비 280주를 기르던 B씨는 "자생한 양귀비가 예뻐서 그냥 놔뒀다"며 "고의로 기르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기르던 양귀비가 관상용과 구분할 수 있는 외관상의 특징이 있는 점과 적어도 양귀비인 줄 알았다면 마약용인지 확인했어야 함에도 그대로 자라게 둔 것은 최소한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이는 점 등을 근거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주택 텃밭에서 양귀비 140주를 재배한 C씨는 "마당뿐만 아니라 마을 여기저기에도 양귀비꽃이 피어 있었다"고 주장해 재판부가 양귀비꽃이 피는 5월 중순 무렵까지 기다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양귀비는 C씨 집 마당에서만 자라났고, 담장이 있어 양귀비 씨앗이 자연적으로 날아와 C씨 집에서 자생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 재판부는 7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18일 "양귀비는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무단 재배와 사용, 종자 소유 등이 금지된 식물"이라며 "불법 재배하거나 자생하는 양귀비 등을 발견하면 즉시 112로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포항해양경찰서도 양귀비 개화기를 맞아 최근 4개월간 불법 재배 사범 단속을 벌여 대마와 양귀비를 몰래 키운 21명을 검거했다고 13일 발표한 바 있다.
해경은 매년 단속을 해도 농어촌 등에서 밀재배가 계속 이뤄지고 있고 주택지나 비닐하우스에서 소규모로 재배된 양귀비 등이 마약 밀매조직에 흘러갈 가능성도 있어 집중적인 단속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