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미술사를 통틀어 생전에 가장 성공한 작가로 베르나르 뷔페(1928~1999년)를 빼놓을 수 없다. 잠시 살펴보자. 19세에 첫 개인전 개최, 20세에 프랑스 최고 비평가들이 선정하는 비평가상 수상, 23세에 유럽 순회전 개최, 28세에 프랑스 대표 작가로 베니스비엔날레 참가. 여기에 대중적인 인기, 단기간에 축적된 롤스로이스로 대변되는 부와 사치, 모델 출신 부인도 추가돼야 하리라.
뷔페라는 이름은 하나의 장르가 됐다. 풍경이건 인물이건 그가 손을 대면 예외 없이 뷔페적인 것이 됐다. 그의 강렬하고 불길한 검은 직선들이 닿는 순간, 세계는 부조리와 참혹과 우수로 가득 찬 것이 된다.
일찍이 프리드리히 니체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비극을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인간에 대한, 아마도 무지에서 비롯된 과대평가가 아닐까. 인간은 자신의 행복조차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시몬 베유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이기주의자조차 될 수 없는 존재다. 제대로 된 이기주의자라면 휴식이라도 누릴 수 있으련만. 인간은 그럴 수 없다.
1999년 10월 4일, 71세가 되던 해 뷔페는 투르의 자택에서 비닐봉지를 얼굴에 뒤집어 쓴 채 스스로 질식사했다. 조금 일찍 ‘광대 짓을 끝낼 때가 됐다’는 말을 남긴 채. 비극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거의 전 생애에 걸쳐) 행복으로 믿었던 광대 짓을 더는 사랑할 수 없었기에. 말년에 그가 몰입했던 주제는 광대와 죽음이었다. 삶은 광대 짓으로, 죽음은 그 덧없는 짓을 중단하는 의식으로 표현됐다. 마지막 해인 1999년 죽음을 주제로 24점의 그림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