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를 악용해 진료비를 ‘부당 청구’한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환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 플랫폼 업체나 전화·문자 등으로 비대면 진료를 하면서 실제 진료를 받지 않은 환자들의 진료비를 허위 청구하는 방식이다. 비대면 진료에는 30%의 가산 수가가 적용되는 만큼 건강보험의 재정 누수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24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에 거주하는 A 씨는 지난해 4월 4일 서울 소재 모 의원에서 코로나19 신속항원 검사를 받고 확진 통보를 받았다. A 씨는 다음날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통해 다른 의원에서 코로나19 진료를 받고 처방약을 배송받았다. 이후 A 씨는 우연한 기회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내 진료정보 열람’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본인이 진료를 받지 않았음에도 진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A 씨는 본지에 “해당 의원이 진료를 하지도 않은 4월 5일과 8일에 진료비를 청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5일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는데 진료비가 청구돼 있었다”며 “심지어 8일에는 전화조차 오지 않았는데 진료비가 청구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A 씨는 이어 “혹시 몰라서 가족들의 진료 기록도 확인해봤는데 비슷한 사례가 추가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해당 병원장은 “가족 단위로 코로나에 걸린 분이 많아 가족 중 한 명을 연결해 다른 분에게 증상을 묻기도 했기 때문에 전화 기록이 남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들이 코로나19 진료는 환자가 진료비를 부담하지 않고 건강보험에서 지급된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환자 본인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직접 진료 기록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병원의 부당 청구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진료는 지난해 7월까지 별도의 본인부담금이 없었다. A 씨의 부당 청구 사례도 본인부담금이 없던 때다. 부당 청구 사례는 초진보다 A 씨의 사례처럼 환자의 개인정보가 확보된 이후인 재진에서 더 많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진료비 부당 청구 사례는 정부 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의 ‘코로나19 진료비 부당 청구 표본조사’에 따르면 전국 병의원 중 코로나19 진료에 참여한 12곳을 조사한 결과 12곳 모두 진료비를 거짓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관계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비대면 진료에 대해 부당 청구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의료 현장에서 부당 청구를 했을 개연성이 있지만 그 규모는 확인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비대면 진료의 부당 청구 사례가 일부 의사나 병원의 일탈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수 있다는 점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올해 3월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을 통한 비대면 진료 현황’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이용 건수는 162만 건에 불과하다. 플랫폼을 이용한 진료는 환자가 신청해야만 비대면 진료가 이뤄지고 즉각적으로 진료 내역을 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정부는 지난 3년간 실시된 비대면 진료 건수가 총 3661만 건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관련 질환으로만 무려 2925만 건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 적어도 2000만 건 이상의 비대면 진료가 의사와 환자 간 전화, 문자 메시지로 진행됐고 이 가운데 상당 건수는 허위 진료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의료 현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허위 진료가 광범위하게 이뤄지면서 건강보험의 재정 누수도 컸을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시범사업에서 비대면 진료 수가는 진찰료·약제비의 30%가 가산돼 대면 진료의 130% 수준으로 책정됐다. 30%의 가산 수가는 시범사업 이전에도 전화상담 관리료 명목으로 적용돼왔다. 비대면 진료가 이뤄지면서 본인부담금을 포함한 진료비는 총 2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도의 진료비는 214억 원, 2021년 1150억 원, 지난해 1조 4529억 원으로 집계됐다. 총 진료비는 1조 5893억 원에 달한다.
재진 위주로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다는 주장도 재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심평원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내과 등 7개 진료 과목에서 실시된 비대면 진료 1833만 건 중에서 초·재진 구분이 불가능한 명세서 843만 건을 제외한 989만 건을 분석한 결과 초진 89만 건, 재진 900만 건으로 초진 비율은 9%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진으로 이뤄진 비대면 진료의 상당 건수가 허위로 청구됐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가 발표한 초·재진 비율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와 관련해 정확한 수치를 도출하는 것이 선행되고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부당 청구 문제는 복지부와 건보공단이 주기적으로 현지 조사와 과다 거짓 청구 의료기관 명단 공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