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벤처기업들도 잇달아 기업형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해 투자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과거에는 바이오·게임 등 일부 업종들만 CVC를 통한 벤처 투자에 적극적이었지만, 최근 들어 다양한 업종의 중소벤처기업들은 물론 스타트업 마저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투자를 통해 주력 사업의 밸류 체인에 속한 기업들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것은 물론 실질적인 투자 성과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27일 벤처투자 정보 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CVC를 설립해 투자를 집행한 중소·벤처기업은 총 24개로 집계됐다. 가장 투자를 많이 집행한 곳은 파마리서치가 설립한 수인베스트먼트캐피탈로 총 21개 기업에 919억 원을 투자했다. 조이시티가 설립한 라구나인베스트먼트(717억 원), 두나무앤파트너스(585억 원)도 투자금액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주목할 점은 CVC 설립을 통한 투자시장 진출이 중소벤처기업 전 분야로 확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반도체 장비 회사인 뉴파워프라즈마는 피앤피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현재까지 13개 기업에 약 180억 원을 투자했다. 투자 대상도 반도체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뇌질환 치료제, 자율주행용 센서, 차량용 반도체, 화상회의 솔루션, 모바일 연금자산 분석, 소셜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집행했다. 디스플레이 제조업체인 비아트론이 설립한 인터밸류파트너스는 설립 후 현재까지 21개 기업에 278억 원을 투자했다.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유방암 진단 AI 솔루션, 유인우주 발사체, 공유주방, 인공지능(AI) 기반 안전 점검 솔루션 업체 등에 투자를 했다.
최근에는 스케일업에 성공한 스타트업들도 투자 전문 회사를 별도로 설립해 벤처 투자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다. 원티드랩, 무신사, 와디즈 등이 대표적. HR테크 기업인 원티드랩은 올해 투자 자회사인 원티드랩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원티드랩은 지난해 매출 503억 원, 영업이익 90억 원으로 설립 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원티드랩은 이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투자 회사인 원티드랩파트너스를 설립해 투자에 나선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원티드랩파트너스는 HR테크를 활용한 차별화된 전략을 보유한 투자회사를 지향한다”며 “원티드랩만이 갖고 있는 HR 데이터를 활용해 성장성 높은 기업들을 발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들의 벤처 투자시장 진출은 ‘투자 가뭄 시대’에 오아시스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초기 창업 기업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앞서 해결했던 경험을 전수해 데스밸리를 건널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디지털 전환 전문 기업으로 현재까지 약 30개 기업에 투자를 집행한 브이엔티지의 김태근 대표는 “일반 벤처캐피털과 다르게 우리 회사처럼 직원이 200명인 회사만 돼도 개발, 마케팅, 홍보 등 다양한 부문에서 피투자사들을 간접 지원해줄 수 있다”면서 “피투자사들에게 먼저 아낌없이 지원을 하면 결국 회사도 투자 수익을 획득하며 동반성장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