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여름밤 더위 달랜 '얼음여왕'의 선율

■바이올리니스트 뮬로바, 5년만의 내한 공연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참가

피아니스트 자린스와 합동 연주

브람스 소나타 등 래퍼토리 다양

화려한 슈베르트 론도 b단조 눈길

앙코르 2곡…여유·잔잔함 돋보여

피아니스트 레이니스 자린스(왼쪽)과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의 공연 사진. 사진 제공=예술의전당피아니스트 레이니스 자린스(왼쪽)과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의 공연 사진. 사진 제공=예술의전당




‘얼음 여왕’이라 불렸던 바이올린 거장의 연주는 여유로움으로 충만한 한편 나이가 무색한 치솟는 정열도 어우러지듯 느낄 수 있었다.

러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64)가 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공연에서 뮬로바는 라트비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레이니스 자린스와 함께했다.



이날 무대에 선 뮬로바의 얼굴은 한결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으로 무대를 시작한 뮬로바는 정확한 음을 한 음씩 연주하면서 명상에 잠긴 듯한 분위기를 입체적으로 풀어나갔다. 시작과 동시에 1악장에서의 도입이 단번에 시선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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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로바의 다음 곡은 현대음악인 다케미츠 도루의 ‘요정의 거리’와 아르보 패르트의 ‘형제들’이었다. 이날 공연 전 방송에서는 “연주자의 요청으로 두 곡은 입퇴장 없이 연달아 연주한다”는 설명을 전했다. 색깔이 다른 두 곡이었지만 뮬로바의 집중력이 더해져 몰입이 끊기지 않았다. 다케미츠가 영향을 받았다는 다카구치 슈조의 시 ‘요정의 거리’가 “작은 새의 균형과 닮은 그것은 죽음의 부표처럼 봄바람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했듯이 고요하면서도 애달픈 세계를 탐구하는 새의 날갯짓이 담긴 듯했다. ‘형제들’에서는 때로는 질주하듯 규칙적으로 분산되는 음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2부에 들어선 뮬로바는 물 오른 실력을 보였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에서 널리 알려진 3악장 ‘비의 노래’는 자린스와의 균형 잡힌 호흡으로 자유로운 리듬을 표현해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슈베르트의 화려한 론도 b단조였다. 화려한 개인기와 함께 끝으로 갈수록 기쁨을 노래하는 열정이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뮬로바는 빈틈없이 짜여진 연주와 무표정한 카리스마로 ‘얼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연주자다. 모스크바 중앙 음악학교와 콘서바토리를 졸업한 후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우승을 거두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구소련에서 촉망받는 연주자로 꼽히던 그는 1983년 20대 초반의 나이로 돌연 서방으로 망명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뮬로바는 이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면서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음반을 발매해 왔다. 가디언은 뮬로바에 대해 “뮬로바의 바흐 연주를 듣는다는 것은 살면서 가장 멋진 일 중 하나”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현재는 첼리스트 매슈 발리와 결혼해 영국 런던에서 지내고 있는 그는 재즈와 집시 음악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확립해 나가고 있다.

이날도 쏟아지는 박수 속에서 뮬로바는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미샤 뮬로브-아바도의 곡 ‘브라질’과 무소르그스키의 ‘호팍’을 앙코르 곡으로 연주했다. 더 이상 ‘얼음 여왕’이 아닌, 거장의 여유로써 무르익은 음악 연주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무대였다.


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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