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과학은 이제 지하자원 탐사를 넘어 우주개발, 에너지전환 등 새로운 연구분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에서 추진되는 새로운 지질과학 연구허브 유치 계획을 기꺼이 지원할 생각입니다.”
존 루든 국제지질과학연맹(IUGS) 회장은 내년 세계지질과학총회(IGC 2024) 개최를 1년 앞둔 28일 부산 벡스코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년 행사의 국내 주최 측인 IGC 조직위원회는 우주, 에너지, 원자력 등으로 확장되는 지질과학의 새로운 연구분야를 전담할 국제 연구기관을 부산에 유치하는 방안을 지방자치단체인 부산시와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루든 회장도 이 구상을 지원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것이다.
루든 회장은 “과거의 지질과학은 지하의 천연자원 발굴과 탐사가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에너지 전환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지질학자는 다른 과학자들과 협업하면서 이 전환의 시대를 헤쳐나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IGC 조직위의 구상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동석한 정대교 IGC 조직위원장은 “‘포스트 IGC’로서 특별한 기관을 설립하면 좋겠다고 루든 회장과 논의했다”며 “확장하는 지질과학 연구를 중점적으로 맡을 사이언스센터(연구소)를 부산시가 주축이 돼서 설립하자고 29일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제안할 예정이다”고 부연했다. 다만 일정, 연구 방식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며 말을 아꼈다.
루든 회장은 내년 행사의 핵심 쟁점이 될 ‘인류세’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기존 ‘홀로세’를 넘어 인간 활동으로 인해 구분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현재를 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2000년대 들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인류세 실무그룹(AWG)’의 논의 결과가 나오면 IUGS가 이를 승인하고 공포할 예정인데, 국내 학계 일각에서는 그 시점이 내년 부산에서 열릴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루든 회장은 “내년 부산 총회에서 (인류세를 규정하는) 결의문이나 성명문이 나오기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며 “인류세 논의는 지난 17년 간 진행됐고 여전히 명확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며 더 많은 시간을 두고 심도 깊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인류세의 시작점을 1960년대 플루토늄 사용 시점으로 볼지 그 이전의 인간 행위가 지구에 영향을 미친 시점으로 봐야 할지 등 다양한 논의가 더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배터리 산업 성장 등으로 중요성이 커진 핵심광물에 대해 그는 “핵심광물을 단순히 공급하고 수요를 충족하는 것뿐 아니라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채굴됐느냐에 시장이 주목하기 시작했다”며 “가령 콩고에서 불법 경로로 광물을 채굴하고 유통하면서 문제가 된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수요가 늘고 산업의 한축으로 자리잡으면서 핵심광물 관련 산업에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가 자리잡기 시작했고 사업자들이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IUGS 주최로 4년마다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는 ‘지질 올림픽’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 세계 대표 지질과학 학술대회다. 내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릴 IGC 2024는 40여개 분야의 주제, 6000편 이상의 학술 발표, 30여개 국내외 지역 현장 답사, 121개 회원국 및 250여개 기관·기업과 1만 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행사 개최를 1년 앞둔 이날 부산시는 사전행사인 ‘세계지질과학총회 성공 개최를 위한 D-1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루든 회장 등을 기조연설자로 초청해 전 세계 연구성과와 인사이트를 학계에 공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