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신 상태였더라도 원활한 교통흐름을 위해 짧은 거리를 운전한 것은 음주운전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앞서 가수 남태현 등 일부 운전자는 음주 후 10m 이내로 짧은 거리를 운전했음에도 법원이 유죄를 선고해 오래전부터 문제 돼온 법조계의 ‘오락가락 판결’ 논란은 여전히 이어질 전망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울산지법 형사항소1-1부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무죄를 유지했다.
A씨는 지난 2021년 8월 밤 지인 등과 술자리를 가진 뒤 술을 마시지 않은 여자친구 B씨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두 사람은 운전 중 다투게 됐고, B씨는 울산 한 도로에 차를 세웠다. 해당 지점은 차량 1대가 겨우 통행할 수 있는 좁은 도로였기 때문에 A씨 차량 정차로 뒤 차량까지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뒤 차량이 경적을 여러 차례 울리자 A씨는 B씨에게 일단 차량을 이동 조치할 것을 부탁했으나, B씨는 거절했다.
A씨는 다른 차량 통행을 막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혈중알코올농도 0.220% 만취 상태에서 차를 10m가량 직접 몰아 큰길로 빠져나간 후 도로변에 주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비록 음주운전을 했지만 위급하고 곤란한 경우를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긴급피난)이라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도로는 주·정차가 금지된 데다가 야간이었고 여자친구 B씨가 운전을 거부한 상황에서 차량을 그대로 두기엔 정체가 이어지고 사고 위험도 컸다는 것이다. 또 A씨가 매우 짧은 거리를 운전해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운 뒤 바로 차에서 내린 점을 참작했다.
검찰은 “A씨가 여자친구 B씨에게 운전을 거듭 부탁하지 않았고, 혈중알코올농도가 매우 높았다”며 항소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좁은 도로에서 대리운전기사를 무작정 기다리거나 다툰 뒤 흥분한 상태에서 운전을 거부하는 여자친구 B씨가 다시 운전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A씨가 직접 짧은 거리만 이동시키고 바로 차에서 내린 것을 볼 때 운전할 의도는 없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을 두고 운전자들은 음주운전 처벌기준이 판사마다 달라 혼선이 크다고 지적한다.
가수 남태현은 지난 3월 서울 강남구에서 술을 마신 뒤 10m가량을 운전하다 벌금 6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또 같은 달 대전에서는 음주상태로 10m 가량을 운전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지난 2020년에는 전북 전주에서 술을 마시고 주차장에서 주차를 위해 후진으로 10m 가량을 운전 한 남성이 면허취소 처분을 받았고,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운송업을 하는 A씨는 “2021년 여름 술을 마시다 잠시 차를 빼달라는 전화가 와 2~3m 가량 운전을 하다 음주운전으로 걸려 벌금을 낸 적이 있었는데 당시 나에 대한 처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그런데 같은 음주운전 상황이더라도 누구에겐 무죄가 누구에겐 유죄가 선고되는 제멋대로식 판결은 반드시 개선돼야 하고 모든 음주운전자에게는 동일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