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사람] 김진권 변호사 "변호사는 가슴 떨리는 일…법·정책 규제 푸는 열쇠공 되고파"

■김진권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

한 사람 보호할 사회 시스템 한계 느껴

서울대 시절 운동권 몸 담아 도피 생활

'전과자'란 낙인에 열리지 않던 취업문

대우맨 입사로 글로벌 산업·경영 배워

학교 선배 원희룡 요청에 보좌관 도전

10년간 국회 드나들며 입법 경험 쌓아

내 일·이름 갖고 싶단 열망에 로스쿨행

사회 문제 해결하는 정책변화 이끌 것

[이사람]김진권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 오승현 기자 2023.08.24[이사람]김진권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 오승현 기자 2023.08.24




“가슴 떨린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다 보니 운동권 학생, 기업인, 보좌관을 거쳐 이제 변호사로서 인생 4막을 열었습니다. 앞으로는 법·정책 변화라는 열쇠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공(입법정책 전문 변호사)’으로서 사회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29일 서울 중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만난 김진권(58·변시 2회) 파트너변호사는 본인 삶이 변화한 원동력으로 ‘이끌림’이라는 단어를 꼽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까지 마주했던 물음에 ‘가슴 떨리는 일을 하자’고 답하면서 이른바 ‘1인 4색’의 삶을 살아왔다는 얘기다. 남의 권유나 뜻 없는 동경보다는 본인의 의지에 따른 판단으로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1막>

‘시골 청년’이 마주한 현실은 ‘비극’=시작은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1983년이었다. 고교 졸업 당시만 해도 김 변호사에게는 ‘학생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다. 하지만 한 신문에 실린 기사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산업 성장으로 미화돼 자행됐던 무분별한 개발로 삶의 터전과 함께 목숨까지 잃은 철거민에 대한 기사였다. 김 변호사는 ‘한 사람의 몸을 보호할 사회 시스템이 없어 사람이 얼어죽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이 배운 지식이 독재에 쓰이는 게 옳은 일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결국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1980년대 대학 영화 운동의 한축을 담당한 ‘얄라셩(서울대 영화 동아리)’에 가입하고 운동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는 82학번 선배인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처음 인연을 맺은 때이기도 했다.

“운동권 학우들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엄혹한 시기’였습니다. 교수님들은 ‘지금이 아니면 공부할 시기를 놓친다’거나 ‘지식을 쌓는 게 우선’이라고 설득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4학년 1학기 때 구국학생연맹 중앙위원이자 반미자주화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 지도책으로 추대됐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되면서 도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3년간의 ‘도망자 생활’. 그는 마산·창원 등지의 공장에서 일했다. 이렇다 할 기술도 없어 잔업·야근 등으로 추가 수당을 받아도 삶은 팍팍했다. 함께 도피한 동지이자 ‘평생 반려자’인 아내가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변호사는 “1988년에 검거돼 6개월가량 수사를 받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같은 해 12월 정부가 운동권 학생들을 일괄 석방하면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으나 결국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김진권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가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법률 ·정책 개정 작업에 이바지해 사회 시스템 변화를 돕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오승현 기자김진권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가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법률 ·정책 개정 작업에 이바지해 사회 시스템 변화를 돕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오승현 기자


<2막>

‘낙인’에 막힌 취업…길 터준 대우그룹=오랜 도피 생활이 마무리됐지만 김 변호사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운동권·전과자라는 ‘낙인’은 취업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김 변호사는 “운동권인 데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빨간 줄’이 있어 취업은 꿈도 꾸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함께 도피 생활을 했던 아내와 결혼했지만 결국 생계를 잇기 위해 다시 경남 창원의 한 공장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법원에서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으나 현실의 ‘징벌’은 현재진행형이었던 셈이다.



“당시 글로벌 경영으로 광폭 행보를 보이던 대우그룹으로부터 지인을 통해 뜻 밖의 취업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는 서울대 운동권 출신을 대거 입사시켜 해외 경영의 첨병이자 새 동력으로 삼으려는 대우의 전략이었습니다.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의 면접을 거친 뒤 대우자동차에서 이른바 ‘대우맨’으로 새출발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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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으로 대기업에 취업하면서 ‘인생 2막’의 문을 연 셈이었다. 그는 대우그룹이 서울대 운동권 출신 신입 사원을 대상으로 한 현장 투어에도 참여했다. 유럽과 남미 등의 공장을 방문하고 글로벌 경영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는 취지였다. 이후 김 변호사는 대우자동차 루마니아 현지 공장 주재원으로 약 4년간 근무하면서 산업이라는 새 분야에 눈을 뜨게 됐다.

<3막>

원희룡과 재회…보수 개혁 공감에 새 도전=대우맨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원 장관의 요청에 의해서다. 원 장관이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김 변호사에게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연락한 것이다. 두 사람은 서울대 1년 선후배로 학생운동 시절에 인연을 맺었다. 게다가 보수 개혁을 기치로 내건 원 장관의 뜻에 공감하는 터라 보좌관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옛소련 붕괴와 민간정부 출범 등 시대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대우그룹에 근무할 때 글로벌 산업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며 기존 학생운동권 이념에만 머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운동의 뿌리였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정치의 근본이 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도 보좌관을 선택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보좌관 시절 강원도 정선 카지노 관련 폐광지역지원특별법 재연장 등 각종 법 개정 작업에 참여했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2002년 대선 이후 ‘차떼기당’이라는 국민의 지탄 속에 천막당사에서 힘든 생활을 할 때 보좌관으로서 경험도 얻었다.

김진권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가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법률·정책 개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김진권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가 2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법률·정책 개정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4막>

늦깎이 변호사의 삶…'나의 열망'에 도전=10년의 보좌관 생활은 김 변호사에게 보람과 안정을 동시에 가져다줬다. 2003년 한나라당 보좌관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는 등 업무 능력도 인정받았으나 김 변호사의 마음 한쪽에는 아쉬움이 존재했다. 여러 입법 과정에 참여했지만 내외부에서 기억하는 것은 그의 이름이 아니라 ‘○○○ 의원 보좌관’이었다. 김 변호사는 ‘내 이름을 걸고 일하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변호사시험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했다. 보좌관 생활 중 방송통신대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학문에 대한 열정’도 2010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교(로스쿨)에 입학하며 새 길을 걷는 데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장 생계가 문제였다. 장학금이 절실한 상황이라 공부에만 매진했다. 4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시험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체력에 한계가 왔다. 부정맥에 목디스크까지 앓았지만 포기하지 않아 결국 2013년 제2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쉰을 바라보는 늦은 나이에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입법·정책 분야의 최고봉에 서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법률 개정은 정책을 바꾸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법률 개정으로 정책이 변경되면 사회도 한 단계 또 진보할 수 있습니다. 변호사라는 인생 4막에 들어선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법·정책의 변화로 사회가 발전하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 변호사는 “향후 국가 법률이나 정책을 고민할 수 있는 독립 연구소를 만들고 싶다”며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발전 전략을 논의하고 이를 실현해 우리나라가 한 단계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가 ‘자유·민주가 활짝 꽃피고 시장경제가 완숙한 나라, 사회 정의가 깊은 강물처럼 흐르고 국민 복지가 함박눈처럼 포근하게 내리는 나라, 이웃 나라들로부터 믿음과 존경과 사랑을 흠뻑 받는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故) 박세일 전 서울대 명예교수의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의 머릿글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이유다.

◇김진권 변호사는

△1964년 경남 의령 △부산 배정고 △서울대 경영학과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대우자동차 노사협력부, 루마니아 현지 생산관리부장·지역판매장 △국회 입법정책보좌관 △한나라당 보좌관협의회 회장 △제2회 변호사시험 합격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


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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