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최근 건설 경기 전망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영업용 레미콘 믹서트럭의 신규 등록을 2025년까지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2009년부터 시작된 신규 등록 제한이 2년 더 연장된 것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레미콘을 굳지 않게 섞으면서 운송하는 믹서트럭은 대체 불가능한 필수 건설기계다. 운송 시간이 90분을 넘으면 굳기 때문에 운송 반경도 제한된다. 레미콘 회사들은 대부분 소기업이어서 믹서트럭을 직접 운용할 여력이 없다. 전체 믹서트럭의 86%인 2만 2645대는 차주가 따로 있는 영업용이다. 영업용 믹서트럭의 차주들은 사용자성이 농후한데도 노조를 결성해 단체행동을 하면서 운반비를 큰 폭으로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도 7월 레미콘 운송노조가 집단적으로 운송을 거부했고 10월과 12월에도 파업으로 건설 공사를 중단시켰으며 현재도 경남 서·남부권 지회가 파업을 벌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노조는 노동을 독점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얻는 교섭력을 바탕으로 높은 임금을 관철하는데 믹서트럭은 정부가 원천적으로 영업용 신규 등록을 금지함으로써 독점적 지대를 누리고 있다. 거의 매년 파업이 일어나는 지하철, 철도, 현대차·기아 등은 공공 부문이거나 거대 기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경쟁이 제한돼 독점적 지대를 향유하면서 노사가 그것을 나눠 갖는 게임을 하는 과정에서 파업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독과점성은 시장에서 경쟁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정부가 신규 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노사 관계의 안정 및 발전을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 걸쳐 민영화, 시장 개방화 등을 통해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노동에 대한 수요는 일반적인 재화와 용역에 대한 수요와 달리 제품 수요로부터 파생된 유발 수요이기 때문에 제품 시장의 독과점성이 노동시장에 그대로 반영돼 노사 관계의 양상을 결정한다.
이번 여름 미국 뉴저지에 있는 아들 집을 방문했다. ‘에어비앤비’ 식으로 저택의 수영장을 빌려 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단돈 75달러에 한 시간 동안 우리 가족만 풀을 통째로 사용하면서 위대한 개츠비가 된 듯했다. 저택 소유주는 유휴 풀을 빌려줌으로써 이득을 얻고 사용자는 상류층의 삶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중간의 ‘플랫폼’ 업체는 사용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풀의 수질을 수시로 체크하는 등의 역할을 하면서 저택 소유주와 풀 사용자를 연결해준다. 풀뿐만 아니라 차량도 이런 식으로 연결해주는 등 개인이 소유한 거의 모든 것을 유휴 시간 없이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인류는 재화와 용역을 점점 더 많이 시장에서 팔고 사면서 발전해왔다. 인류의 발전사는 시장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인터넷 및 인공지능(AI)의 발달은 이 시장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규제에 묶여 이런 서비스를 전혀 받을 수 없다. ‘에어비앤비’ 이용은 내국인에게는 불법이고 ‘우버’는 국내 진출이 무산됐으며, ‘타다’는 만신창이 끝에 적법 판정을 받았지만 창업자가 엄청난 손실을 봤다. 근로기준법상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득을 취득할 수 없어 간병인·가사도우미 등은 건당 수수료 대신에 월회비를 납부하고 헤드헌팅은 경영 컨설팅 명목으로 수임료를 받고 있다. 원격제어 수면 개선 제품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표준 인증을 받았지만 국내 인증을 얻지 못해 사업을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등 도처에 지뢰처럼 깔린 황당한 규제들이 기업 활동을 옥죄거나 신규 진입을 막고 있다. 아무리 혁신적인 창업 아이디어도 규제에 막혀 스타트업이나 벤처로 빛을 볼 수 없는 것이다.
레미콘 믹서트럭의 경우도 에어비앤비 식으로 차주와 건설 현장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있어야 한다. 운송 반경이 짧고 지역에 따라 제각각인 건설 경기를 반영해 이 플랫폼이 차주와 건설 현장을 연결해주면 탄력적인 조절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요원한 얘기라면 이 방향으로 가도록 적어도 영업용 레미콘 믹서트럭의 신규 등록 제한은 하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있고 관료들에게 이 가치를 실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레미콘 믹서트럭의 신규 등록 제한은 이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줄기차게 외치는 자유가 산업 현장에도 적용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