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직에 종사하는 박모(43) 씨는 유독 비가 많이 내렸던 그 날도 거래처 방문을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폭우로 시야 확보가 어려워 평소보다 속도를 줄였지만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사고가 벌어졌다. 앞 차량이 급정지하는 바람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노면이 미끄러워 충돌이 일어난 것. 앞차를 들이받으며 범퍼가 깨지긴 했어도 사고 직후 목이 뻐근한 느낌 외에 눈에 띄는 부상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 며 치료없이 경과를 지켜보기로 한 박씨.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던 걸까. 일주일이 지나자 목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팔, 다리가 저려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자 병원을 찾은 박 씨는 사고 때 발생한 ‘편타성 손상’으로 목디스크가 악화되어 마비 증상까지 나타났다는 소견을 들었다.
교통사고는 운전 경력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는 이벤트다. 일상을 앗아가는 사고의 위험은 언제 어디서든 도사리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강수량이 많은 시기의 도로는 더욱 위험하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최근 3년간 기상 상태에 따른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빗길 교통사고 치사율이 맑은 날에 비해 1.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교통사고가 일어났을 때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리 가벼운 부상처럼 여겨지더라도 사고로 근육, 인대 등에 손상이 생기면 시간이 지나면서 악화되어 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사고 규모와 관계 없이 반드시 의료기관을 찾아 정확한 상태를 점검하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편타성 손상(WAD·Whiplash-Associated Disorder)은 교통사고 후유증을 유발하고 악화시키는 대표 원인이다. 차량의 급정지 및 가속으로 인해 목이 앞뒤로 크게 휘어지며 경추 주변 골·연부조직에 손상을 입히는 증상으로, 교통사고 환자의 약 83%가 경험한다고 알려졌다. 이미 척추나 관절 질환이 있는 경우 편타성 손상이 증상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심하면 마비까지 이르는 영구적인 신경손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사고 초기의 미세한 손상은 엑스레이(X-Ray), 자가공명영상(MRI) 등의 영상검사를 통해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 증상의 발현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사고 직후 빠른 대처 뿐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한 이유다.
한방에서는 편타성 손상이 발생했을 때 추나요법과 침·약침치료, 한약 처방 등을 병행하는 한방통합치료를 실시한다. 외부 충격으로 무너진 경추의 균형을 다시 올바르게 잡아주는 추나요법은 통증을 낮추고 목 주변 부위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준다. 침치료는 충격으로 경직된 근육과 인대를 이완시킬 뿐 아니라 기혈 순환을 돕는다. 한약재 유효 성분을 경혈에 직접 주입하는 약침은 통증을 유발하는 염증을 해소해 신경 회복을 촉진할 수 있다. 어혈(혈액이 정체돼 뭉치는 현상) 제거와 뼈, 인대 강화에 탁월한 한약 처방을 병행하기도 한다. 여기에 동작침법을 병행하면 더 효과적이고 신속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동작침법은 환자의 혈자리에 침을 자침한 상태로 한의사가 주도해 신체를 능동·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치료법이다. 국제학술지 통증(Pain)에는 동작침법의 급성 통증 감소 효과가 일반 진통제의 5배 이상이라는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편타성 손상에 대한 동작침법의 효과는 SCI(E)급 국제학술지 ‘임상의학(Journal of Clinical Medicine)’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생한방병원 연구팀이 교통사고에 의한 편타성 손상으로 입원치료를 받는 환자 100명에게 한방통합치료를 진행한 후 무작위로 50명을 선정해 동작침법을 추가로 실시한 결과 통증숫자평가척도(NRS), 시각통증지수(VAS) 등의 각 지표가 한방통합치료만 시행한 경우(한방통합치료 단독군)보다 더욱 빠르게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사람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한다. 차량과 재산의 피해와 달리, 한번 망가진 건강은 수습이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느껴지는 증상이 없더라도 미세한 손상이 큰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꼼꼼한 검사와 치료를 통해 교통사고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