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을 보면 양대 노총(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참여 없이 이 기구가 존립할 수 없습니다. 우리(경사노위)의 존재 이유가 양대 노총의 참여입니다.”
올 6월 7일 제1노총인 한국노총이 7년 5개월 만에 경사노위 참여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1999년 탈퇴를 결정한 민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의 보이콧은 노동계와 경영계·정부 간 공식 대화 창구가 닫히고 사회적 대화가 사실상 멈췄다는 상징적인 일이다. 1988년 노사정위원회로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1997년 외환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처럼 국민적 위기 때마다 대화와 타협의 공간을 열었다.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노사정(노동계·경영계·정부)이 대화와 합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며 한국노총 복귀를 계속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말처럼 경사노위의 최고 의결 기구인 본위원회는 의결 정족수 규정상 한국노총 없이는 열 수 없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복귀가 요원하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과 함께 현 정부에 ‘노동 탄압을 중단하라’고 대치하고 있다. 노동 개혁 일환인 노조 회계장부 공개(회계 투명성),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 구속 등 복귀를 위해 풀 ‘매듭’이 많다. 김 위원장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세 번이나 만나 복귀를 설득했다. 김 위원장은 “강제로 (한국노총을) 복귀하게 할 방법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양대 노총은) 정부가 제출하라는 회계장부를 안 내면서 여러 정부위원회에서 제외되고 있다”며 “양대 노총도 피해를 입고 여러 갈등이 커지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경사노위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서 그동안 다양한 노동계 이슈에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국회처럼 입법하거나 정부처럼 정책을 만들지는 못한다. 경사노위의 중요성은 사회적 대화와 합의를 통해 법과 정책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게 하는 것에 있다. 우리 사회의 과제인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판도라 상자’와 같은 정년 연장이다. 지난달 한국노총은 60세인 법정 정년을 65세까지 늘리는 입법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고령화, 연금 수급 시기, 노인 빈곤층 등 정년 연장에 대한 필요성은 넘친다. 하지만 노사·세대 등 다양한 갈등을 안은 살얼음판 같은 논쟁 거리기도 하다. 국내 대표 기업인 현대차 노사도 정년 연장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은 정년 연장 논의야말로 반드시 경사노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모든 사안을) ‘법으로 하자’는 식은 아니다”라며 “모든 것을 법으로 하면 (국회 지형이 달라질 수 있는) 내년 선거 이후에는 다시 어떻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또 “(정년 연장은) 노사의 대화와 합의 없이 입법만으로 결코 원만하게 갈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정년 연장이 일단 경사노위 논의 테이블에 오르면 결론에 이르는 데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법적 정년 연장에 대해서는 사실상 반대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경사노위의 한계로 노사정이 모여도 결론을 내지 못하고 논의가 겉돈다는 점이 꼽혀왔다. 경사노위 위원장이 중립을 지키면서도 방관자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계속 나왔던 이유다.
김 위원장은 “나 같은 사람이 (기업·공직 등에) 계속 앉아 있으면 청년은 어디에서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우리(고령층)도 어렵지만 젊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대책 없이 법으로 무조건적인 정년 연장을 하자는 주장은 청년과 제로섬 게임을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근로자는 이득을 보지만 이 일자리를 원하는 구직 청년에게는 손해를 입히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이 법적 정년 연장에 대해 사실상 반대하는 배경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문제 인식이 깔려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정규직이 만든 1차 노동시장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이 형성한 2차 노동시장으로 나뉜 층을 뜻한다. 정부는 대기업과 정규직 노조가 자신의 이익만을 극대화한 게 원인 중 하나로 판단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노조원은 293만 9000명으로 노조 조직 가능 근로자 중 14.2%를 기록했다. 85.8%는 비노조원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14.2% 노조원 가운데 83.5%는 양대 노총에 가입해있다. 문제는 노조가 민간보다 공공에,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300명 이상 근로자 기업의 노조 조직률이 46.3%지만 30명 미만은 0.2%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은 “청년들이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은 대기업이고 중소기업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도 인력난을 호소한다”며 “이런 이중구조 속에서 ‘누구’를 위해 정년 연장을 하자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경사노위는 ‘14%(노조)’에 붙어 있는 기구가 아니라 소리도 못 내고 신음하고 있는 ‘86%(비노조원)’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한복판에 있던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현재의 노조 모습은 본인이 해온 노동운동의 철학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노조가 노조원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이중구조가 낳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 노조는 (우리 사회에) 많은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렇지 못한 세력들은 아직 (일종의) ‘외부자’”라며 “압력을 행사하는 쪽에만 서는 것은 아웃사이더에 가혹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사노위는 양대 노총 안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외부자 입장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지론은 양대 노총으로부터 강한 반론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양대 노총은 ‘86%’ 근로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면 이들도 노조를 만들어 사용자 측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존 노조뿐만 아니라 전체 근로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또 양대 노총이 비정규직, 여성, 장애인, 외국인 근로자 등 취약 계층 보호를 촉구하고 활동하는 점도 간과했다고 지적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국민이 노조에 바라는 모습은 자기 이기주의가 아니다”라며 “대기업(원청) 노조가 (사측에) 임금을 계속 올려달라고 하면 대기업 밑에 1·2·3차 하청까지 (이윤이) 내려올 게 없어 밑에 있는 근로자는 계속 절망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기업·정규직이 임금 100을 벌면 중소기업·비정규직은 50~60에 불과할 만큼 임금 격차가 심한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만일 대기업 노조가 자신들의 임금 인상분을 얼마만이라도 하청에 양보하겠다고 하면 서로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할 것”이라며 “그런 대기업 노조가 나오면 내가 업고 다니겠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사노위는 현재 노동 개혁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전문가를 주축으로 노사 관계 제도·관행 개선 자문단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가 운영 중이다. 이 기구들에서 다뤄지는 의제는 노사 관계,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파견 제도 등 찬반이 들끓을 논쟁적인 성격이 있다. 정부의 초기 노동 개혁 추진 과정은 전문가 과제 도출→정책화→입법이라는 일종의 트랙이 있었다.
김 위원장은 “(자문단과 연구회의 과제) 발표 시기를 정할 수 없을 정도로 논의 과정에서 쟁점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치겠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복귀를 한 번 더 요청한 것이다.
He is...
△1951년 경북 영천 △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1976년 한일도루코 노조위원장 △1985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 △1996~2006년 제15·16·17대 국회의원(부천 소사) △2006~2014년 제 32·33대 경기도 도지사 △2022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