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 해결과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한 대화 창구 역할을 해온 대북 전문가 빌 리처드슨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7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비영리단체 리처드슨센터는 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리처드슨 전 대사가 전날 매사추세츠주 채텀 자택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뉴멕시코주에서 연방하원의원과 주지사 등을 지낸 리처드슨 전 대사는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북한, 쿠바, 이라크, 수단 등 적성국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한 활동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과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해 여러 차례 방북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름을 알렸다.
리처드슨 전 대사는 1994년 12월 주한미군 헬기가 휴전선 인근에서 비행하다 북한에 격추됐을 당시 하원의원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있었던 일을 계기로 조종사 송환 협상을 맡게 됐다. 북한과 교섭 끝에 데이비드 하일먼 준위의 유해를 돌려받았고, 생존 조종사 보비 홀 준위를 사건 발생 13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데려왔다. 또 2년 뒤인 1996년에는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해 강석주 당시 외교부 제1부부장을 만나 밀입국 혐의로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의 석방을 끌어냈다.
리처드슨은 정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북핵 문제 등에서 북한과 비공식 대화 창구 역할을 했다.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한 2003년 1월 뉴멕시코 주지사였던 자신을 찾아온 한성렬 유엔 주재 북한차석대사를 만나 핵 문제를 논의했다. 2007년 4월에 북한을 방문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6구 송환 약속을 받아냈으며, 민간인이었던 2013년 1월에도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북한을 찾아 핵실험 유예와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석방을 요청했다.
2019년에는 북한을 상대로 비공식 외교를 활발하게 한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는 등 해외 억류 미국인 석방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 후보로 5번이나 추천을 받았다. 리처드슨센터는 “그는 정부에서 일한 기간과 이후 해외에서 인질로 잡혀있거나 부당하게 구금된 사람들을 석방하는데 기여한 것을 포함, 평생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았다”고 고인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