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가 수출과 내수에서 심각한 동반 침체를 겪고 있다. 중국의 7월 수출액은 2817억6000만 달러(약 376조 원)로 전년 동기대비 14.5% 줄었고 수입도 2011억6000만 달러로 12.4% 감소했다. 같은 달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0.3% 하락했고 생산자물가도 4.4% 떨어져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웠다. 소매 판매와 산업 생산 증가율은 각각 2.5%, 3.7%로 전망치를 크게 밑돌았다. 중국 경제가 ‘위드 코로나’ 전환 뒤에도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도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에 힘입은 ‘상저하고(上低下高)’의 경기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부동산 개발 업체 중 매출 기준으로 지난해 1위였던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까지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몰려 중국의 경기 둔화가 더 심해지면서 ‘차이나 리스크’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저성장·고실업률로 中 경제 ‘시한폭탄’
리창 중국 총리는 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만나 “올해 들어 중국 경제가 지속해 회복되고 있고 전반적인 회복세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 경제는 정반대로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유타주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중국 경제는 ‘시한폭탄’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중국의 제조업 투자 증가율은 올해 상반기 6.0%에 그쳐 지난해의 10.4%에 비해 크게 위축됐다. 게다가 코로나19 봉쇄 3년을 겪는 동안 각자도생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20%대 후반 수준을 유지하던 가계 저축률이 33%로 치솟았다. 도시 지역 가계 저축률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중국의 외환시장도 불안하다. 외환보유액은 3조 3000억 달러에 달하지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리저브 금액이 4000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도 심리적 저지선인 1달러당 7.3위안을 넘어섰고 8위안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답습 우려도 커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달에는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우려가 불거지면서 ‘차이나 리스크’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에서 5년 연속 1위를 달리던 비구이위안은 올해 7월 신규 주택 판매가 33%나 급감하면서 2021년 11월 헝다의 파산에 이어 채무 불이행 위기에 내몰렸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시장 거품 붕괴로 장기적인 경기 침체에 빠졌던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무엇보다 중국의 부동산 총액이 60조 달러(약 8경 원)로 미국의 3배에 이를 정도로 너무 높다는 점이 문제다. 여기에다 중국의 부동산과 연계된 그림자 금융 규모는 60조 위안에 달한다는 점에서 중국발(發) 부동산 리스크가 줄 충격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박한진 한국외국어대 중국외교통상학부 초빙교수는 “비구이위안 사태는 앞으로 중국 경제에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중국 정부의 대응이 너무 늦을 경우 중국의 체제 자체가 위협받는 총체적 난국에 봉착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는 앞날이 더 어두워 보인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출생아 수가 956만 명으로 사망자(1041만 명)보다 적어 인구 자연증가율이 -0.06%로 떨어졌다. 전체 인구도 14억 1175만 명으로 전년 대비 85만 명 줄었다. 올해는 인구학자들이 말하는 중국의 인구 절벽이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2050년 이후에는 해마다 중국 인구가 1000만 명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청년 실업률이다. 청년 실업률은 올해 7월 기준으로 21.3%라는 공식 통계가 나왔지만 이는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수치라는 평가를 받는다. 극심한 경기 침체와 실업난 속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취업 자체를 포기한 ‘탕핑족’이 통계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탕핑족은 8300만 명가량 된다고 하는데 이들을 통계에 넣으면 실제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40%를 훌쩍 넘어 50%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올 하반기 1100만 명이 넘는 중국의 대학 졸업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취업 시장에 쏟아져나오게 된다. 이들까지 실업자에 포함될 경우 중국의 청년 실업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수 있다. 지난달 중국 국가통계국이 각종 7월 경제지표들을 발표하면서 청년 실업률 공개를 제외한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정부의 연이은 부양 조치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7월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대출금 상환을 1년 연기하고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 조치를 취했다. 이어 8월 들어서는 15일에 인민은행이 중기유동성지원금리(MLF)를 2.65%에서 2.50%으로 내렸고 21일에는 대출우대금리(LPR)를 0.15포인트 인하해 3.45%로 조정했다. 이에 더해 2970억 위안(약 53조 원)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1조 5000억 위안의 정부 특별융자채권 발행 등 대책을 쏟아내며 부동산 수요 부진 개선 조치를 발 빠르게 추진했다. 하지만 경기회복세는 여전히 미약하고 저물가 현상이 되레 악화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는 커져만 가고 있다.
“리창 총리는 ‘1그램’ 부족하다” 비난도
‘3기 시진핑 체제’ 이전의 중국 정부는 유동성을 풀었다 조였다 하면서 경기를 조절해왔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잇단 부양책에도 경기 침체 상황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현 정권의 무능에 대한 의심이 싹트고 있다. 특히 리창 총리의 역량 부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리창 총리는 전임자인 리커창 총리와 달리 이름에 가운데 글자 ‘커(克=1g)’가 없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리창 총리는 1g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저성장·고실업에 시달리는 지금의 중국 경제 상황은 사람으로 치면 지독한 성인병에 걸린 상태와 같다. 1980년대 개혁 개방 이후 40여 년간 고도성장을 구가했던 중국 경제는 해마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이는 투자와 부채로 만든 몸집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 경제 전문가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공동부유(共同富裕·함께 잘살자)’ ‘방주불초(房住不炒·부동산은 투기용이 아니다)’로 대변되는 반(反)시장경제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차이나 리스크’의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박 초빙교수는 “시진핑 시대가 고착화하면서 사회주의 정치적 색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면서 “시장 친화적인 규제 완화를 기본으로 한 대대적인 혁신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지금의 위기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차이나 리스크’의 파장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에 대한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여전히 20% 선에 달한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 성장하면 한국 GDP가 0.15% 성장하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한중 관계는 달라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국은 중국의 주요 수입국 순위에서 줄곧 1위를 지켰는데 최근 통계에서는 5위로 내려앉았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올해 1~7월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감소율이 무려 25.9%에 달한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이 막대한 이득을 얻는 시대가 급격하게 저물고 있음을 직시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잘나가던 시절의 중국은 이제 잊으라”
중국 경제의 하강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수출을 다변화해야 한다. 특히 ‘포스트 차이나’ 시대에 대비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인도·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의 새 시장 개척이 중요하다. 산업 기술의 탈(脫)중국화를 가속화하고 인공지능(AI)용 반도체 같은 첨단 전략산업 육성을 통해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는 데도 힘써야 한다. 한중 관계는 ‘뉴노멀’ 시대에 진입했으므로 새로운 대중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제 지나간 시대는 잊어야 한다”면서 “과거에 잘나가던 중국에 매달려 의존도를 줄이지 못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의 방만 재정으로 급증한 국가 채무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가계 부채 급증이 차이나 리스크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저해하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윤석열 정부가 차이나 리스크 관리에 중점을 두면서 국내적으로는 가계·국가 부채 관리도 강화해야 하는 복합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셈이다. 임호열 탄탄글로벌네트워크 원장은 “지금 한국은 대중국 수출이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계 부채와 국가 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중첩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대중 수출 위축과 부채 급증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 정교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차이나 리스크가 한국 경제에 기회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견해가 있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의 수출 제품이 미국으로 가는 것이 어려워지면 우리가 대신해 미국에 더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중국 견제로 인한 한국의 대중 수출 하락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면서 “미중 갈등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라는 점을 유념해 수출 다변화로 단점보다 장점을 최대한 살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