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초음파를 사용한 한의사의 진료행위가 의료법 위반이라는 판결을 9년만에 뒤집었다. 한의사들의 오랜 숙원인 현대의료기기 사용 범위가 넓어질 기미를 보이면서 이를 반대하는 의사들과 직역갈등이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9부는 이날 오후 의료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원심 판결을 기각하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A씨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보조적으로 활용해 진료한 행위가 한의학적 원리에 의하지 않는 점이 명백하다거나 의료행위의 통상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의료법 규정상 '한의사로서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작년 12월 대법원 판결 취지를 따른 것이다.
A씨는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 금지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2010년 3월~2012년 6월까지 약 2년 여간 총 68회에 걸쳐 초음파진단기기를 이용해 환자 B씨의 신체 내부 촬영, 자궁 내막 상태 확인 등의 진료를 하고, 한약 처방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B씨는 서울시보라매병원에서 자궁내막암 2기 판정을 받았다.
검찰은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1심과 2심은 2016년 박씨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벌금 80만 원을 부과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12월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대법원의 무책임한 결정으로 국민 건강권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삭발을 통해 항의 의사를 표출했고,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릴레이 1인 시위를 전개했으며 바른의료연구소는 전 한의협 회장과 대법 재판연구관을 고발하는 등의 총공세를 펼쳤다. 의료계 전문학회들과 함께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이 문제가 많다는 점을 알리는데도 힘썼다.
하지만 이날 판결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이 합법화될 소지가 생겼다. 현행법상 한의사가 방사선을 이용한 엑스레이(X-ray)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등을 사용하는 것은 여전히 불법이다. 한의사들은 이번 판결이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달 한의사가 뇌파계를 사용해 파킨슨병과 치매를 진단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전날(13일) 열린 엑스선 골밀도측정기 1심 판결에서 사법부가 한의사의 손을 들어준 것도 한의계의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대한한의사협회는 법원 판결 직후 환영 의사와 함께 정부에 후속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민의 진료 선택권 확대와 진료 편의성 제고를 위해 이들 검사를 한의원에서 시행하는 데 대한 건강보험 급여화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의협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총력 대응을 예고했다. 의협은 "초음파 진단 기기는 의과대학에서 이론 및 실습을 거쳐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갖춘 의사만이 사용하고 있다"며 "이런 자격과 면허를 갖추지 못한 채 초음파 진단 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