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미국 뉴저지주에 사는 A(38세)씨는 식품점 체인 트레이더 조(Trader Joe's)를 방문했다가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 한국산 냉동 김밥을 사기 위해 일주일 내내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었지만, 이미 물량이 동이 났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다음 재고는 다음 달이나 돼야 들어온다는 소리에 발길을 돌렸다.
미국에서 ‘K-스트리트푸드’의 대표명사인 김밥이 이른바 ‘대박’ 행렬을 터뜨렸다. 국내 중소 식품업체가 만들어 납품한 이 냉동 김밥의 제품명은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딴 ‘KIMBAP’이다.
이 김밥은 지난 8월부터 ‘보릿고개’를 겪기 시작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맛을 기반으로 우엉과 당근 등 채소만을 넣어 이른바 ‘비건 푸드’로 자리잡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어느 동네에 가면 살 수 있는 지, 지점 별 재입고 시기가 언제인 지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다.
K-스트리트푸드 시초 알린 냉동 김밥…비건 푸드 인기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 중소기업의 냉동 김밥은 최근 250t 초도 물량이 팔린 뒤 280톤 물량을 이르면 이달 말부터 수출할 예정이다.
틱톡·인스타그램 등에선 한국산 냉동 김밥을 전자레인지에 2분 10초 간 데워 먹어보고 찬사를 쏟아내는 영상이 매일 올라온다. 계란물 입혀 구워 먹기, 떡볶이나 컵라면·불닭볶음면과 함께 먹기 등 다양한 방법을 추천하는 영상도 있다.
이 김밥이 열풍을 타기 시작한 것은 미국에서 냉동 김밥을 데워 시식하는 영상으로 틱톡 조회수 1100만여회를 기록한 한국계 미국인 사라 안(Sarah Ahn)씨 덕분이다. 그는 한국인 어머니께 냉동 김밥 시식을 권했고, 어머니는 “일반 김밥보다 맛있다”라는 평을 하며 입소문을 탔다. 안씨가 이 김밥을 먹어보는 영상을 올린 뒤 날개 돋친 듯 판매 돼 약 2주 만에 전 매장에서 매진을 기록했다.
기존에는 ‘김밥’이 일본의 스시 종류로 분류되며 사실상 현지에서 재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업체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식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 기반해 냉동 김밥 연구를 시작했다. 김밥 속에 고기류를 넣을 경우 통관이 까다로운 데다가 미국 시장에서 비건족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우엉과 유부를 넣어 김밥을 만들었다. 김밥을 만든 뒤 영하 50도 냉동고에 넣어 급속 냉각을 시켜 전자레인지에 조금만 돌려도 갓 만든 것 같은 식감을 구현했다. 가격도 한 줄에 3.99달러(한화 5310원) 수준에 불과해 햄버거 평균 가격보다 싸다. 이 업체는 280만톤을 추가로 생산해 이르면 이달 말부터 수출할 예정이다.
스트리트 푸드로 국내 제조사 매출 쑥↑
김밥 열풍은 한국의 대표적인 스트리트 푸드 음식의 세계화의 단면일 뿐이다. 만두, 김, 떡볶이 등 CJ제일제당(097950)의 비비고 브랜드부터 시작해 편의점들의 떡볶이, 어묵 등 즉석 식품까지 전 세계에서 ‘K-문화’의 인기를 기반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K-분식’ 열풍인 셈이다.
CJ제일제당은 비비고 브랜드를 미국을 비롯해 수출을 늘린 결과 미국 프로농구(NBA) 최고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 등 로스앤젤러스 레이커스 선수들이 ‘비비고’ 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뛰는 등 인지도가 높아졌다.
라면도 대표적인 ‘K-스트리트 푸드’ 중 하나다. 매년 수요가 급증하는 ‘K-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농심과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도 고공 행진하고 있다.
농심에 따르면 신라면은 2021년부터 해외 매출이 한국 매출을 앞질렀다. 신라면을 필두로 농심의 전체 매출에서 해외가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해 50%를 넘었고, ‘불닭 챌린지’ 열풍을 탄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은 60%가 넘는다.
몽골·베트남 등 편의점, ‘K-길거리 음식’으로 데이트 명소
‘K-푸드 백화점’으로 불리는 한국 편의점들의 인기는 더욱 거세다. 현지화를 택하는 대신 한국 제품을 앞세워 한류 스타와 콘텐츠의 뒤를 잇는 ‘제 3의 한류’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몽골에서 한국 편의점 인기는 점차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K-팝 스타들이 광고 모델로 등장하며 그들이 먹었던 한국 음식을 맛보기 위해 한국 편의점은 ‘핫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CU와 GS25는 몽골에서 각각 330여 개와 200여 개의 편의점을 운영하며 점유율 1,2위를 꿰찼다. 두 편의점 수를 합치면 전체 몽골 편의점 수의 약 90% 수준이다. 몽골 편의점 시장을 사실상 한국 편의점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몽골에서는 한국 편의점이 이른바 ‘외식 장소', 혹은 ‘데이트 명소’로 자리 잡았다. 현지화 대신 한국 편의점을 그대로 옮겨 ‘K-컬쳐’ 속 나오는 커피, 치킨, 어묵, 떡볶이 등 제품들을 직접 먹고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젊은 세대의 마음을 공략한 이다. 아울러 음식을 통해 문화까지 전파함으로 ‘K-문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편의점이 고급 소매점으로 인식됨에 따라 이 곳에서 파는 음식들은 ‘푸드 트럭’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몽골 울란바토르 광장에서 떡볶이 푸드 트럭을 운영하고 있는 B(26세)씨는 “언니가 한국으로 유학을 가며 떡볶이를 접하게 됐다”며 “몽골인들의 입맛과 비슷한 덕분에 재료를 공수해 여기서 판매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편의점 브랜드는 이러한 몽골인들의 한국 사랑을 바탕으로 점포를 계속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CU는 현지 편의점 업계 최초로 몽골의 제 2도시인 다르항에도 3개의 점포를 개점하면서 울란바토르 뿐 아니라 몽골 전역으로 출점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GS25는 2025년까지 점포를 500개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K-문화’ 열풍이 점차 확대되며 몽골, 카자흐스탄 등을 교두보로 한국의 거리 음식도 퍼지는 추세”라며 “치킨, 커피, 떡볶이 등 분식 류를 위주로 젊은 층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