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값이 그야말로 금값이네, 금값.”
매년 명절을 앞두고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을 찾는다는 양 모(61) 씨는 지난 16일에도 어김없이 발걸음을 했다가 껑충 뛴 과일 가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골 가게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양 씨는 “올해는 선물과 제수용 과일을 아무래도 줄여야 할 것 같다”며 “작년에 5박스를 주변에 돌렸는데 올해는 2박스만 사야 할 판”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추석을 앞두고 장마와 태풍, 폭염 등으로 과일 가격이 급등해 서민들의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고 있다. 통계청의 8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과일 물가는 전년 대비 13.1% 올랐다. 이는 지난 1월(13.6%) 이후 최대 증가폭이다. 품목별로는 사과(30.5%), 귤(27.5%), 복숭아(23.8%), 딸기(20.0%), 수박(18.6%), 밤(16.3%), 참외(10.6%), 파인애플(10.6%) 등 순으로 크게 올랐다.
가락시장 내 대부분 청과물 점포는 추석 선물용 사과 5kg를 6만 원에서 7만 원 사이에 판매하고 있다. 이날 가락시장으로 장을 보러 나온 김수자(64)씨는 “작년에 4만~5만원이던 것에 비하면 많이 올라 부담된다”며 “과일이 사치품 같아서 요즘은 사 먹는 빈도를 줄였다”고 말했다.
특히 사과의 경우 장마가 가을까지 이어지며 일조량이 부족해 제대로 익지 못하고 탄저균 감염 확대까지 겹치면서 공급량이 줄어 가격이 급등했다. 가락몰 보성상회 직원은 “작년 이맘때에 비해 사과가 크기도 작고 맛도 덜한데 물건이 없으니 가격이 올랐다”며 “지난 설이나 작년 추석에 비하면 손님이 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넥타이 차림으로 시장을 찾은 50대 김 모 씨도 “배도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특히 사과가 맛도 덜하고 비싸서 올해는 배를 선물하려고 한다”며 선물용 배 10박스를 예약하기도 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시장 상인도 크게 오른 과일 가격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한일상회 박성회 씨는 “작년에는 사과 10kg에 5만 원 정도였는데 올해는 7만 원 정도”라며 “명절 대목 치고는 과일을 찾는 손님이 없는 편”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같은 과일 가격 상승세가 유지된다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농촌진흥청이 1500가구의 3년간 가계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구당 과일 구매액은 2019년 51만 1585원에서 2022년 46만 4167원으로 9.3% 줄었다. 같은 기간 채소는 6.9%, 농축산물은 1.4% 줄어든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큰 감소 폭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과일 가격에 상품성이 떨어지는 일명 ‘못난이 과일’도 인기다.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청량리 시장을 찾았다는 하 모(74) 씨는 “과일이 많이 비싸져 일부러 멀어도 저렴한 청량리 시장을 찾아왔는데 결국 생채기가 난 사과 6개를 만 원에 샀다”며 못난이 사과를 내보였다. 가락시장 내 점포에서도 상품성이 떨어지는 과일들을 한 데 모아 판매하고 있었다. 한 상인은 “올해는 가격이 비싸다 보니 떨이나 상품성이 떨어지는 상품을 찾는 손님들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추석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사과·배등 20대 추석 성수품 가격을 작년보다 5% 이상 낮은 수준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추석 명절까지 주요 성수품 수급안정 대책을 추진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14만 9000톤의 성수품을 시장에 공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