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투자자의 중화권(중국·홍콩) 주식 보관액이 두 달 만에 약 6000억 원 증발했다. 중국 부동산 위기와 예상보다 저조한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 등 ‘차이나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중국을 떠나는 자금이 늘고 있어서다. 증권가에서는 중국 정부의 부양책에도 단기간에 중국의 경제 여건이 회복되기 어려운 데다 중국 공산당의 경제 관리 능력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18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중화권 주식 보관액은 14일 기준 30억 9592만 달러(약 4조 1073억 원)로 집계됐다. 7월 말 35억 5396만 달러(약 4조 7150억 원) 대비 12.9%(4억 5804만 달러·약 6076억 원) 감소했다.
자금 이탈 속도가 빨라진 건 8월 초부터로 중국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지난달 7일 채무불이행(디폴트)에 직면하면서다. 헝다 등 대형 건설사의 경영난이 잇달아 발생함에 따라 가뜩이나 어려운 중국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을 수 있고,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왔다. 시계열을 늘려보면 중화권 증시 자금 이탈은 2021년 2월 말 73억 296만 달러(약 9조 6902억 원)로 고점을 찍은 후 진행형이다. 올 1월 말 중화권 주식 투자액이 44억 2278만 달러(약 5조 8685억 원)로 줄어든 후에도 자본시장 탈(脫) 중국 현상은 지속되며 오히려 속도를 높여나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화권 종목은 해외 주식 투자자의 보관액 상위 순위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올 초만 해도 외화 주식 보관액 순위 50위 내에 중화권 주식은 3종목이 포함됐다. 32위 홍콩 텐센트홀딩스(2억 4316만 달러), 38위 중국 항서제약(2억 2024만 달러), 47위 항셍차이나 지수 상장지수펀드(ETF·1억 8114만 달러) 순이었다. 하지만 14일 기준으로는 단 한 종목도 찾아볼 수 없다.
전 세계 투자자도 중국 증시에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외국인 투자자들이 8월 한 달 동안 중국 주식 약 900억 위안(16조 3600억 원)을 매도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가 2014년 ‘후강퉁’(상하이 증시와 홍콩 증시 간 교차거래)을 출범시킨 후 월간 최대 순매도액이다.
외국인 자금 이탈에 중국 당국은 부동산 위기 진화를 위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성연주 신영증권 연구원은 “여전한 부동산 디폴트 위기와 경기 방어를 위해 인민은행은 15일부터 지급준비율을 0.25% 포인트 인하하기로 하고 시중에 약 7000억 위안(약 127조 3860억 원)의 유동성을 공급할 예정” 이라며 “급락하던 위안화 환율이 안정세를 찾는 등 부양책이 조금씩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위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있다. 키움증권 홍록기 연구원은 “부동산 개발사의 높은 부채 비율이 문제인데 과거처럼 회복되기 어렵다” 면서 “중국 정부의 수요 진작책 역시 시장 기대보다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중국 경제가 40년 가량 발전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정부 통제나 정책 영향이 제한적” 이라며 “시진핑의 독재 체제가 거대 경제권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