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소유주나 임원이 주식을 팔 때 투자자들이 이를 미리 알 수 있게 하는 ‘내부자거래 사전 공시 제도’가 국회 통과 문턱에 들어선 가운데 재계가 “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재계 인사들은 해당 법안이 재산권을 침해하는 데다 시장 변동성을 키워 일반 투자자까지 손해를 보게 한다고 비판했다.
18일 금융투자 업계와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최근 상장사를 둔 재계 인사 대다수는 내부자거래 사전 공시 제도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를 두고 “성급한 입법”이라고 입을 모아 반대 의사를 냈다. 내부자거래 사전 공시 제도는 기업 총수나 임원 등이 자사주를 거래할 때 매매 예정일부터 30~90일 일찍 그 계획을 공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공시 의무를 위반하면 형벌, 과징금, 행정 조치 등의 제재를 부과한다. 2021년 ‘카카오페이 먹튀’ 사태가 재발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으로 올 상반기 주가조작 사태 이후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재계는 특히 제도를 도입할 경우 매도 공시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커져 일반 투자자가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또 JP모건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투자 전략 노출을 걱정해 국내 자본시장에서 아예 발을 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추광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최대주주가 언제, 얼마에 주식을 팔겠다는 신호를 주면 시장 왜곡 현상이 발생해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매도 공시가 뜨면 공매도 세력이 들어올 수 있어 기업 펀더멘털(기초 체력)과 관계없는 주가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산업계 곳곳에서는 우리 정부가 개정안을 만들 때 미국의 내부자거래 사전 거래 계획 제출 제도를 잘못 이해하고 참고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미국은 매도 공시를 개인의 선택에 자율적으로 맡기고 항변권(affirmative defense)을 부여해 처벌을 피하게 하는 반면 한국의 법안은 의무적으로 거래 계획을 보고하게 하고 미준수 시 벌칙·과징금을 부과하는 형태라는 지적이었다.
한 상장회사 관계자는 “미국 법안을 참조했다면 항변권과 같은 인센티브 제도도 같이 들여오는 것이 맞다”며 “혜택은 두고 처벌 조항만 가져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사후 규제가 이미 있는데도 사전 일괄 규제를 또 도입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라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정부는 자본시장법 172조 단기매매차익반환규제와 174조 미공개중요정보 이용금지 등의 조항을 통해 내부자가 미공개 정보 등을 이용해 부당 이익을 취득한 경우 이를 반환하고 처벌할 수 있도록 한다.
업계에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다음주께 해당 자본시장법 개정안 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법사위는 이달 13일 전체회의를 열었다가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여당 측 의견에 처리를 미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