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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뿌리는?…“국방경비사관학교 시작” vs “신흥무관학교 역사 편입”[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만주서 독립군 양성한 ‘신흥무관학교’가 모태

1946년 5월 창설 ‘국방경비사관학교’가 전신

좌파 측 “독립군·광복군을 국군 역사로 봐야”

우파 측 “친일 프레임이 육사 정체성을 훼손”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 등 항일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했지만 ‘자유시 참변’ 계기 철두철미한 소련 공산당원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료가 발굴되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 등 항일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했지만 ‘자유시 참변’ 계기 철두철미한 소련 공산당원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료가 발굴되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홍범도 장군 흉상 논란으로 시작된 육군사관학교의 정체성, 즉 육사의 전신이 어디인지 두고 좌우 진영이 대립하며 이념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방는 육사의 전신은 ‘국방경비사관학교’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7일 정례 브리핑에서 “육사는 1945년 설립된 군사영어학교를 모체로 해서 국방경비대사관학교, 조선경비사관학교를 거쳐서 1948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로 정식 출범했다”고 밝혔다. 전 대변인은 “이는 육사의 전신, 그러니까 육사에 한정해서 말씀드린 것”이라며 “국군의 정신적 뿌리, 토대는 광복군·독립군에 있다”고 말했다.

사의 표명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같은 답변을 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육사의 정신적 뿌리는 신흥무관학교인가, 아니면 국방경비사관학교인가’라는 질문에 “육사의 정신적 뿌리는 국방경비사관학교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육사 뿌리에 대해 신흥무관학교론을 펼쳤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육사 졸업식에 참석해 ‘육사의 뿌리는 신흥무관학교’라고 밝힌 데 이어 최근 홍범도 흉상 이전과 관련해 지난 3일 SNS에 올린 글에서 "독립영웅 다섯 분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 모신 것은 우리 국군이 일본군 출신을 근간으로 창군된 것이 아니라 독립군과 광복군을 계승하고 있어 육사 역시 신흥무관학교를 뿌리로 삼고 있음을 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이회영 선생 등이 개인 재산을 털어 중국 만주에 세운 독립군 양성기관이다. 1920년 일제의 탄압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3000명 이상의 독립군 영웅을 배출했다.

‘해사’가 ‘육사’ 보다 4개월 먼저 창설


국방경비사관학교는 1946년 5월 서울 태릉에 설립된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를 지칭한다. 미 군정은 통역장교와 각군 간부요원을 확보하기 위해 1945년 12월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에 ‘군사영어학교’를 세웠다가 이듬해 4월 폐교시킨 뒤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를 창설했는데 국방부는 이 학교가 육사의 모태라는 입장이다.

당시 만주군과 일본군에서 활동한 장교들이 이 학교로 편입했다. 이런 탓에 육군사관학교 초대 이형근 참령부터 18대 정래혁 중장까지 육사를 이끌었던 학교장들은 친일 행적 논란이 일고 있다. 역대 육군총장도 제1대 이응준 소장부터 제18대 김계원 대장까지 군사영어학교 또는 일본군 장교 출신자들이 맡았다. 육사 출신이 주장하는 육사의 ‘군 성지론’은 억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짚고 넘어갈 대목은 우리 군의 사관학교 시초를 따져 본다면 해군사관학교의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1946년 1월 17일에 해군병학교가 창설됐다. 1946년 6월 15일 조선해안경비대 사관학교(해군사관학교)로 개칭했다가 1949년 1월 15일에 이를 해군사관학교로 명명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육사의 전신은 1946년 5월 1일에 군사영어학교에서 임관하지 못한 학생 60명과 조선경비대 각 연대의 사병 중에서 2∼3명씩 선발된 28명 등 모두 88명을 제1기생으로 개교한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다. 1946년 6월 15일 조선경비사관학교로 개칭했다가 1948년 9월 5일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로 이름을 바꿔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0년 9월28일 서울수복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서울 시가를 행진중인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모습. 사진 제공=국방부지난 2010년 9월28일 서울수복 60주년 기념행사에서 서울 시가를 행진중인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모습. 사진 제공=국방부


국방부의 입장에 대해 좌파 성향의 광복군 후손 측은 즉각 반발했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15일 “일제의 머슴을 하던 이들이 국군의 원조라고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한국광복군 창군 기념일(9월17일)을 이틀 앞두고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광복군 창군 기념식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를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는 육군사관학교(육사)에 대해서는 “최근에 국방부는 육사 모체를 (일본군 잔재들이 주류로 만들어진) 국방경비사관학교로 보고, 거기에 있는 다섯 분의 독립영웅 흉상이 필요 없으니 제거하겠다고 했다”면서 “이 문제는 단순히 흉상을 세우고 철거하고 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정체성의 문제에 우리가 직면해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을 겪고도 철저히 반성하지 않았던 것이 1910년 망국으로 이어졌다”며 “의병과 독립군,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스팔트 위 방치된 육사 명예졸업장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육사가 선조들에게 수여한 명예졸업증을 5년 만에 반납하며 비판 분위기에 동참했다. 이들은 지난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사 정문 앞에서 “육사는 조국을 되찾고 겨레를 살리기 위해 몸과 생명을 바쳤던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투사의 숭고한 호국 정신을 계승할 자격이 없기에 수치스러운 명예졸업증을 되돌려준다”고 밝히고 바닥에 명예졸업증을 내려놨다.

육사 앞에는 지청천 장군 외손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윤기섭 선생 외손 정철승 변호사 겸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조직위원장, 이상룡 선생 증손 이항증 광복회 이사를 비롯해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 전 독립기념관장은 “육사의 이번 처사는 대한민국 헌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자 육사의 역사에서 독립운동을 지워버리겠다는 단절 선언”이라고 성토했다. 정 변호사도 “왜적 일본에 굴욕해 동족을 살상한 백선엽 장군의 동상까지 세우자고 했던 육사는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계승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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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는 아직까지 명예졸업증서 반납에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후손들과 경찰, 취재진이 철수한 지 한 시간이 지난 오후 4시31분에야 육사 관계자가 나와 졸업증을 회수했다. 육사가 회수한 졸업증이 어디에, 어떻게 보관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육사 관계자는 “반납하신 명예졸업증은 육사에서 보관하고 필요 조치에 대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 15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앞에서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의 손자인 정철승 변호사(가운데)와 지청천 장군 외손자인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오른쪽)이 육사 명예졸업증서 반납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15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앞에서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의 손자인 정철승 변호사(가운데)와 지청천 장군 외손자인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오른쪽)이 육사 명예졸업증서 반납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파 성향 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조급한 친일 프레임이 육사 정체성을 훼손했다고 대응하고 있다.

2018년 3월1일 당시 청와대 지시로 육군사관학교(육사)에 홍범도 장군 등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을 조급하게 설치됐다고 주장한다. 흉상 설치 등은 육사 내부에서 정상적인 논의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졸속으로 추진되는 바람에 공청회를 거치지 않은 것은 물론 내부 회의·논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지적이다. 그간 정치적 중립을 지켜온 육사가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친일·반일 이분법 논리’를 적용해 육사에 ‘친일 프레임’ 씌우기며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2017년 8월14일 윤경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 겸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상임대표가 문 대통령을 만나 “육사 모체를 친일파 우글거린 군사영어학교로 하는 건 잘못된 자존심 문제“라며 ”국군의 날도 유엔군이 38선을 넘은 10월1일이 아닌 광복군 창설일인 9월17일이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2주 뒤인 2017년 8월 국방업무보고에서 문 대통령은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도 육사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시했다. 육사 생도들의 대적관·국가관 정립의 핵심 과목이었던 ‘6·25전쟁사’, ‘북한학’, ‘전쟁과 전략’등 3개 한국전쟁사 과목을 공통필수에서 전공선택 과목으로 변경하고, 육사 아파트 외멱에 ‘육사’ 마크를 지웠다. 우파 진형이 문 정부가 ‘육사 개조운동’을 본격화했다고 평가하는 근거다.

육사 원조인 군사영어학교에 ‘친일 프레임’


국방부와 육사에 따르면 2018년 1월 당시 학교장인 김완태 교장은 주요관계자가 모인 회의에서 3월6일로 예정된 육사 74기 졸업 및 임관식 행사 준비에 들어갔다. 10년 만에 대통령이 임석하는 2018년 육사 졸업 및 임관식 주제는 독립군·광복군으로 정해져, 그 일환으로 독립군·광복군 흉상 설치 지시가 하달됐다. 그해 제 99주년 3·1절을 맞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독립 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까지 열렸다.

육사 총동창회 관계자는 “독립군·광복군과 관련 없는 박승환 참령(대한제국 군인)을 추가해 충무관 내부에 6인의 흉상을 설치하는 등 육사 내 충분한 의견 수렴과 공감대 형성이나 관련 규정에 의한 절차 준수 없이 조급하게 추진해 오늘날 흉상 이전 관련 논쟁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됐다”고 했다.

육사는 그 동안 근·현대사 과정에서 역사적인 이견, 정쟁과 이념의 갈등이 될 수 있는 인물과 사건에 대해 ‘진보냐 보수냐’ 같은 이분법적 정치적 논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흉상 같은 기념물 설립에 매우 신중했다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2013년, 12·12 당시 신군부 총탄에 쓰러진 고(故 )김오랑 중령 추모비 건립 추진의 경우, 전 국민과 육사 동문들의 공감대 형성을 통해 건립되는 추모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육사 내 의견 표명으로 성사되지 않은 건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육사는 자신들의 신중론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무너졌다고 하소연한다. 육사 출신 국방부 관계자는 “육사는 1946년 개교 이래 77년간 학교 설립 기여자인(밴플리트), 6·25전쟁 전사자(심일), 월남파병 순직자(강재구), 전 국민이 공감하는 군인정신의 표상(안중근) 등 4명을 제외하고는 동상 및 흉상 설치에 신중한 입장”이라며 “어떠한 정치적 요소도 개입시키지 않는데 문재인 정부 때 이 같은 원칙이 흔들렸다”고 밝혔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 지난 2021년 8월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건물 벽에 그의 귀환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 지난 2021년 8월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가보훈처 건물 벽에 그의 귀환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해방 후 미 군정에 의해 1945년 12월 개교한 군사영어학교는 육사의 모체로 여겨진다. 이후 국군의 모체인 남조선국방경비대 및 제1연대가 창설됐고, 육사의 전신인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가 창설됐다. 이 학교 출신 중심의 한국군 병력은 유엔군의 도움으로 북한의 침략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사실 한국광복군은 중국에서 한반도로 진군할 기회를 놓쳤고 고국으로 돌아올 시기가 늦춰졌다. 더구나 광복군은 일본군·만주군 출신 장교에 비해 숫자가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아 미 군정이 만든 남조선경비사관학교 등을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게 사실이다. 이는 북한의 인민군 공군을 비롯한 초기 내각에 만주군·일본군 출신 경력자들이 대한민국 내각·군에 비해 많았던 데서 입증된다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게다가 한국광복군 주력인 제2지대장 출신으로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지낸 철기 이범석이 과거 일본군·만주군 출신 장교들을 설득해 국군 창군에 협조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들의 참여로 국군이 틀을 갖출 수 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도 있다. 이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개개인의 이념에 달리 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다.

“육사 특정 시점 선열 계승 한정 안돼”


일각에서는 육사의 정체성을 포함해 교육 과정은 우리 역사의 과거 특정시점 선열들의 정신만이 육사가 계승해야 할 것으로 한정 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가 유독 육사의 뿌리를 독립군·광복군으로 봐야 한다고 국한하며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육사의 정체성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육사 출신 한 예비역 장성은 “동상·흉상의 설치가 대상 인물의 정신 계승 여부를 판단하는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하려 한다면 모든 위인들의 동상·흉상이 육사에 있어야 하냐는 반대 질문을 던질 수밖에 나올 것”이라며 “그렇다고 독립군·광복군 흉상 이전이 그분들의 정신을 뿌리째 들어내 버리는 것이라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육사 출신 영관급 예비역도 “육사는 삼국시대의 화랑정신, 고려의 상무정신, 조선 및 대한제국의 의병정신,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정신 등 국가 안위를 위해 등장했던 모든 정신을 계승·내면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는 생도대 각 중대의 명칭과 교내 각종 건물의 명칭에 잘 드러나 있는데 문재인 정부 시절 조급하게 추진한 독립군·광복군 흉상 이전 논란을 이제라도 제거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는 육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행동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육사 관계자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육사는 모든 역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교육하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향후 흉상 설치 같은 국난극복역사 학습공간을 조성하는데 있어 육사 구성원 간 논의를 비롯해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한 이후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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