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요계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허지영 기자가 친절하게 읽어드립니다.
K-팝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도일 NCT(엔시티)의 ‘무한 확장’ 시스템이 올해로 막을 내렸다. 지난 2월 SM엔터테인먼트는 전 이수만 대표 프로듀서가 떠난 후 ‘SM 3.0’ 시대를 맞이해 엔시티의 무한 확장 체제 종료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하지만 여전히 엔시티의 무한 확장이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지난 2016년 엔시티 데뷔 이후 7년. 무한 확장 시스템은 무엇을 남겼을까. 무한 확장 없는 엔시티는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까.
◇새 멤버가 계속 들어온다...그래서 NCT는 몇 명? = 엔시티(NCT)는 ‘네오 컬처 테크놀로지(Neo Culture Technology)’의 약자다. ‘여럿’을 뜻하는 ‘n’과 ‘도시’라는 뜻의 ‘city’를 아울러 여러 도시에서 활약하는 그룹이라는 뜻도 담았다. 그룹의 특징은 ‘무한 개방’과 ‘무한 확장’이다. ‘무한 개방’은 멤버 수에 제한이 없는 시스템이다. 처음부터 인원이 확정되어 데뷔하고,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멤버 변동이 거의 없는 기존 아이돌 그룹의 시스템과는 전혀 다르다. 일례로 엔시티 127, 엔시티 도재정 멤버인 도영은 엔시티 127 데뷔 후 약 1년 뒤인 2017년에 팀에 합류했다. 멤버 정우는 2018년경 엔시티 127 새 멤버로 발표됐다. 팀 확장 종료가 발표된 올해 기준으로 엔시티 소속 멤버는 태일, 쟈니, 태용, 유타, 쿤, 도영, 텐, 재현, 윈윈, 정우, 마크, 샤오쥔, 헨드리, 런쥔, 제노, 해찬, 재민, 양양, 천러, 지성, 시온, 리쿠, 유우시, 정민, 대영, 료, 사쿠야 총 27인이다. 참고로 웨이브이 멤버였던 루카스는 사생활 논란으로 팀에서 퇴출됐다. 2020년부터 올해 초까지 멤버였던 쇼타로와 성찬은 SM 신인 보이그룹 라이즈로 재데뷔했다.
◇NCT U랑 NCT 127, 무엇이 다를까 = ‘무한 확장’은 일종의 유닛 시스템과 비슷하다. 엔시티 유(U), 엔시티 127, 엔시티 드림(DREAM), 웨이브이(WayV) 등 그룹 간 멤버가 유동적으로 바뀐다. 이적도, 병행도 가능하다. 일례로 인기 멤버 마크는 엔시티 드림과 엔시티 127에 동시에 속해 있으며, 윈윈은 엔시티 127 멤버로 데뷔했지만 웨이브이로 이적했다. 각 유닛의 콘셉트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가장 큰 연합팀은 엔시티 유로, 엔시티라는 브랜드를 처음으로 알린 유닛이다. 본디 이 연합팀은 앨범마다 참여 멤버가 달랐다. 2016년 데뷔곡 ‘일곱 번째 감각’에는 태용, 도영, 텐, 재현, 마크가 참여했다. 2018년 발표된 ‘엔시티 2018 엠파시(EMPATHY)’앨범 타이틀곡 ‘보스(BOSS)’에는 태용, 도영, 재현, 윈윈, 정우, 루카스, 마크가 참여했다. 그러나 엔시티 127 등이 두각을 드러낸 2020년 이후로 엔시티 유는 개별 그룹이라기보다는 엔시티 127, 엔시티 드림 등으로 각개 활동하던 멤버가 모두 모여 활동하는 단체 포맷으로 굳어지게 됐다. 지난달 멤버 23인 모두가 참여한 앨범 ‘배기 진스(Baggy Jeans)’가 예시다. 앨범의 수록곡에는 곡의 콘셉트에 따라 23명의 멤버가 각각 다른 조합으로 곡을 녹음했다.
엔시티 127은 서울을 기반으로 한 지역거점팀이다. 태일, 태용, 재현, 마크, 유타, 윈윈, 해찬 7인조로 데뷔했으나 도영과 쟈니, 정우가 합류하고 윈윈이 중화권 그룹 웨이브이로 가면서 2019년부터 9인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엔시티 드림은 마크, 런쥔, 제노, 해찬, 재민, 천러, 지성이 데뷔 때부터 7인조 체제로 활동한다. 중화권 그룹 웨이브이는 SM엔터테인먼트 중국 레이블 Lable V 소속으로, 2020년 엔시티 유닛으로 공식 합류했다. 쿤, 텐, 윈윈, 양양, 헨드리, 샤오쥔 6인조로 이뤄졌다. 엔시티 도재정은 유닛 중 유일하게 ‘고정 멤버’로 못 박고 나온 유닛으로, 도영, 재현, 정우로 구성돼 있다.
◇소속사도 팬도 헤맸다... ‘순환 그룹’의 한계 = 호기롭게 시작한 시스템이었지만, 문제도 많았다. 우선 그룹의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되기 어려웠다. 데뷔 초 엔시티를 대중에게 각인시켜야 했던 엔시티 유도 K-팝 팬덤에 신선함보다는 의문을 안겼다. 멤버 간 끈끈한 팀워크와 ‘케미스트리’를 중요시 하는 K-팝 팬덤 정서상 멤버 변화는 ‘무한한 가능성’보다는 붕 떠 있는 불완전한 그룹이라는 인상을 줬다. SM의 일방적 멤버 변화도 팬들에게 반감을 샀다. 2019년 인기 그룹 엔시티 127의 멤버 윈윈이 갑작스럽게 엔시티 127 활동을 중단하고 웨이브이로 이적한 사건에 대해 팬들은 크게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엔시티 드림은 데뷔 당시 ‘청소년 연합팀’을 내세웠다. SM은 이 팀을 소속사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미성년자 신인의 등용문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멤버가 만 20세가 지나면 팀에서 탈퇴해야 하는 ‘졸업 제도’가 있었다. 처음 졸업을 맞이한 멤버는 2018년 만 20세가 된 마크였다. 마크는 2018년 말 팀을 떠났으나, 2020년 4월경 졸업 제도가 폐지되며 팀에 돌아오게 됐다. 정규 1집 ‘맛(Hot Sause)’, 미니 2집 ‘위 고 업(We Go Up)’ 등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졸업 제도에 대한 팬덤의 반발마저 심해져 결국 기존의 목표를 접은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국내 정서상 멤버가 순환되는 가변적인 그룹 시스템을 성공시키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SM은 본디 ‘여러 도시’라는 뜻을 가진 그룹명처럼 각 국가의 대도시 지역 거점 그룹을 만들어 멤버들을 순환시키는 방안을 발표했으나, 7년 간 만든 지역 거점 그룹은 한(엔시티 127), 중(웨이브이), 일(엔시티 뉴 팀·NCT NEW TEAM·가칭) 3개 국가에 그쳤다.
◇'확장' 멈췄더니 앨범 더 잘 팔렸다 = 아이러니하게도 엔시티의 지역거점팀은 ‘무한 확장’, ‘무한 개방’ 정체성을 버린 뒤 더욱 좋은 성적을 거뒀다. 엔시티 127은 윈윈의 탈퇴 여파가 마무리된 2020년 ‘엔시티 #127 네오 존(Neo Zone)’을 발표했는데, 초동(앨범 발매 후 첫 일주일 간 판매량)이 대비 2배 이상 뛴 27만여 장을 기록했다. 이는 당시 엔시티 유닛에서 가장 높은 성적이었다. 엔시티 127은 이후 꾸준히 성장해 2021년 발표된 정규 3집 ‘스티커(Stikcer)’와 지난해 발매된 정규 4집 ‘질주 (2 Baddies)’이 각각 합산 판매량 300만 장을 넘기며 2연속 트리플 밀리언셀러를 달성했다.
엔시티 드림도 마크의 재합류 후 눈부신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발매한 정규 2집 ‘글리치 모드(Glitch Mode)’가 초동 140만 장을 달성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고, 1년 만인 지난 7월 발매한 정규 3집 ‘아이에스티제이(ISTJ)’는 선주문량만 420만 장을 달성하며 전작 대비 2배 이상의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줬다. 마크는 “엔시티 드림은 서사가 특별한데, 그 서사를 우리의 무기로 만드려고 했던 시도가 굉장히 럭키한 점”이라며 ‘칠드림’의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무한확장 끝난 앞으로의 NCT는 = 지난 2월 SM엔터테인먼트 이성수, 탁영준 공동 대표 이사는 ‘SM 3.0 시대, 팬이 묻고 SM이 답하다’라는 영상에서 2023년 엔시티의 무한 확장 시스템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 이사는 “더 이상의 멤버 변동은 없을 것이며, 기존의 멤버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한 팀 한 팀 지원할 예정”이라고 방향성을 발표했다.
엔시티 유닛의 문을 닫는 팀은 일본 현지팀인 엔시티 뉴 팀(가칭)이다. 지난 14일까지 방영한 오디션 프로그램 ‘엔시티 유니버스 ? 리스타트(NCT Universe : LASTART)’를 통해 뽑힌 5명의 멤버(리쿠, 사쿠야, 대영, 정민, 료)와 기존 SM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인 시온과 유우시가 합류해 총 7인조로 구성됐다. 이들은 올해 하반기 데뷔를 목표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한국 거점팀인 엔시티 127과 중화권 거점팀인 웨이브이에 이어 일본 현지 시장에서 엔시티의 입지를 다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엔시티 유는 지난달 28일 정규 4집인 ‘골든 에이지(Golden Age)’를 발매했다. 엔시티 127, 엔시티 드림, 웨이브이로 활동하고 있는 멤버 20명이 참여한 단체 앨범이다. 타이틀곡 ‘배기 진스’는 힙합 댄스 장르의 곡으로, 엔시티의 특징인 화려한 퍼포먼스를 잘 보여주는 곡이다. 앨범은 국내 각종 음반 차트 주간 1위를 비롯해 중국 QQ뮤직 디지털 앨범 판매 차트 주간 1위, 중국 쿠거우뮤직 디지털 앨범 판매 차트 1위, 일본 라인뮤직 실시간 앨범 톱100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외신에서도 호평받았다. 영국의 음악 전문 매거진 NME은 “엔시티는 지난 7년 동안 K-팝에 실험적인 색깔을 불어넣는 대표주자가 되었다”며 “‘골든 에이지’는 엔시티에게 행운 같은 앨범이며, 음악적으로 그들이 목표를 성취하고, 황금기를 맞이할 것을 의미한다”고 조명했다.
7년의 도전과 실험, 시행착오를 거치며 엔시티는 유닛 팀 멤버 고정 및 연합 앨범 발매라는 두 가지 포맷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엔시티는 순환 그룹이라는 이수만의 당초 목표에는 닿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K-팝 팬덤에 맞게 진화했다. ‘무한 확장’이라는 정체성은 내려놓았지만, 엔시티라는 정체성을 확보한 개별 팀은 앞으로도 따로 또 같이 팬들과 함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