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법인이 지난해 해외 계좌에 보유하고 있다고 국세청에 신고한 가상자산이 13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120조 원가량은 코인 발행사들이 자체 발행한 가상자산이었지만 개인 1000여 명도 1인 평균 76억 원가량의 가상자산을 해외 계좌에 보유하고 있었다. 5억 원 이하 가상자산이 신고 대상에서 제외된 점을 고려하면 실제 해외에 보유 중인 가상자산 규모는 신고액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세청은 20일 올해 해외 금융 계좌 신고 인원은 총 5419명, 신고 금액은 186조 4000억 원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대비 신고 인원은 38.1%(1495명), 신고 금액은 191.3%(122조 4000억 원)나 증가했다. 해외 금융 계좌 신고 제도가 시행된 2011년 이후 금액·인원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신고 대상은 국내 거주자 및 내국 법인 중 2022년에 보유한 해외 금융 계좌 잔액이 매월 말일 중 어느 하루라도 5억 원을 초과한 경우다. 특히 이번에 처음 신고 대상에 포함된 해외 가상자산 계좌 규모가 130조 8000억 원으로 전체 규모를 끌어올렸다.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달러 등 법정화폐와 가치가 연동된 가상자산) 등을 포함한 가상자산은 전체 신고 자산 가운데 70.2%를 차지했다.
가상자산 신고분의 92%(120조 4000억 원)는 73개 법인이다. 국세청은 코인 발행사인 법인 신고자들이 해외 지갑에 보관하고 있던 거래 유보 물량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은 1359명이 10조 4150억 원의 해외 가상자산을 신고했다. 1인당 평균 신고액은 76억 6000만 원이다. 연령대별로 따져보면 30대가 123억 8000만 원, 20대 이하 97억 7000만 원, 50대 35억 1000만 원 순이었다.
가상자산을 제외한 예적금 계좌, 주식 계좌 등 해외 금융 계좌의 경우 전년 대비 13.1%(8조 4000억 원) 감소한 55조 6000억 원이 신고됐다. 예적금, 집합 투자 증권, 파생상품 계좌 신고 금액은 모두 상승했으나 주식 계좌 신고 금액이 33.1%(11조 6000억 원) 줄어든 영향이다. 지난해 해외 주식시장 불황 탓에 보유 주식 평가액이 하락하면서 주식 계좌 신고 금액 자체가 감소한 탓이었다.
국세청은 해외 가상자산 계좌 신고가 의무화된 만큼 해외 코인 투자 규모 파악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거래소 바이낸스나 바이비트 등 해외 거래소에서 선물 등 고위험·고수익 거래를 해온 투자자들의 실태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거액의 코인 거래는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을 통해 포착될 수 있지만 해외 거래소를 통한 투자는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해외 거래소로 몰리던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가상자산 신고 안착에 따라 국내 거래소로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만 5억 원 이하의 해외 가상자산은 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해외 비자금 은닉, 탈세 등 불법 거래를 차단하는 효과는 일부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세청은 국가 간 정보교환 자료 등을 통해 해외 금융 계좌 미신고 혐의자를 철저히 검증해 과태료 부과, 통고처분, 형사 고발, 명단 공개 및 관련 세금 추징 등을 집행할 예정이다. 신고 의무 위반 금액이 50억 원을 초과하면 형사처벌을 받거나 인적 사항이 공개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