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청론직설] “북러 군사협력 선 넘지 않도록 러시아에 경고 수위 높여야”

◆조태열 전 주유엔 대사

ICBM 기술 등 이전 땐 안보 위협…변수 많아 ‘밀착’ 한계

한미일·EU, 북러 강력 제재하고 中의 대러 견제 유도해야

경제안보 컨트롤타워 필요…核잠재력 일본 수준 격상을

자강·연대 중요, “미·중 맹수 대하려면 내부 분열 끝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 러시아의 첨단 군사기술이 북한에 이전될 경우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조태열 전 주유엔 대사는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신경 써야 할 변수들이 있으므로 북러 군사 합의 내용이나 실제 이행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선을 넘지 않도록 러시아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전 대사는 또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완성 단계에 접어든 만큼 우리의 핵 잠재력을 일본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한미원자력협정 업그레이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조태열 전 주유엔 대사가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중 협력에 이어 북러 밀착으로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려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완성 단계에 이른 만큼 플랜B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권욱 기자조태열 전 주유엔 대사가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중 협력에 이어 북러 밀착으로 북핵 문제 해결이 어려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완성 단계에 이른 만큼 플랜B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권욱 기자








-최근 북러 정상회담으로 핵·미사일과 관련된 러시아의 첨단 기술이 북한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포탄을 제공하는 대가로 군사 정찰위성이나 ICBM, 핵 추진 잠수함 등과 관련한 핵심 기술을 이전받기로 합의했다면 심각한 상황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 위반, 국제사회의 제재, 중국의 반응 등 러시아가 신경 써야 할 변수들이 있으므로 합의 내용이나 실제 이행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한미 ‘핵협의그룹(NCG)’, 한미일 공조 등을 통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북러가 그들의 합의 이행에 나서면 그 내용에 따라 강도를 달리해 대응해야 한다. 안보리의 기능이 마비된 만큼 미일 등과 협조해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유럽연합(EU)의 강도 높은 제재를 끌어내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미 NCG 등에서 논의하는 ‘북핵 억제 시스템’이 충분한 억지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미 NCG는 실행력 강화를 위해 협의를 진행 중인 단계여서 아직 충분한 대응 시스템을 갖췄다고 보기 힘들다. NCG 설치로 북한의 핵 억지력 강화를 위한 한미 공조에서 우리의 발언권이 높아진 만큼 이 기구가 북러 군사 협력에 효율적인 대응 수단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북러 협력이 구체화하면 속도도 굉장히 중요해진다. NCG 협의를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완성에 대비해 어떻게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가.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은 이미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플랜B가 필요하다. 북러 군사 협력으로 그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우리의 잠재적 핵 역량을 일본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한미원자력협정을 업그레이드하는 방안을 정부가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북러 합의에 핵추진잠수함 기술 협력이 포함된 게 확인되면 우리도 호주처럼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이전받기 위한 대미 외교 노력을 적극 시도해야 한다.

-러시아와의 외교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북러 군사 협력이 선을 넘지 않도록 러시아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여야 한다. 북러 밀착은 중국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든다. 현재 우리가 의장국으로서 추진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견제 역할을 유도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북중러가 밀착하고 중러가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BRICS)’ 확대에 나서는 등 세계의 블록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권위주의 국가들이 자유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기반으로 한 국제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의 대미 체제·이념 경쟁과 미국의 대중 포위·공세 전략이 완화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는 한 블록화 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중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러가 밀착하면서 북핵 문제 등 우리의 실존적 안보 위협은 해소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악화하고 있다. 다만 브릭스 확대로 주요 7개국(G7) 확대 논의가 촉발될 수 있다. 중러와의 관계에서 오는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호주 등과 함께 G7 가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각자도생을 해야 하는 블록화 시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안으로 우리의 힘을 키우는 자강을 하고 밖으로는 한미 동맹을 토대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자강을 위해서는 실질적인 핵 억지력 향상 등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이에 못지않게 강대국들이 우리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기술력, 초격차 기술을 갖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대중러 관계는 물론 대미 관계에서 레버리지(지렛대)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외교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오히려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측면이 많다. 우리가 왔다 갔다 하면 상대가 우리를 신뢰하지 않고 우리가 신뢰받지 못하면 상대를 설득하지 못한다. 동맹을 훼손할 수 없다는 확고한 원칙을 지키면서 그 속에서 중러와의 관계를 다뤄야 할 것이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힘 있게 뒷받침해줄 수 있는 국내의 정치적·지적·문화적 토양이다.

-국내 정치 환경이 이 같은 전략을 감당할 준비를 하지 못한 것 같다.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블록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전략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국내 정치적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그동안의 수세적이고 임기응변적인 전술적 대응에서 벗어나 우리의 사고 수준을 전략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미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이 최근 “중국도 맹수고 미국도 맹수라 그들을 대하려면 내부 분열부터 끝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정곡을 찌른다.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 우리 내부에 있다는 자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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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시대에 한미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북중러의 밀착으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한미일 협력 강화가 북중러 밀착을 초래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한미일 협력이 약화된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북중러 3국은 상호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지금 목도하는 밀착도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 중국은 오히려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이후 한중 관계를 원만히 관리하려고 힘쓰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중국의 태도를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가치 동맹 중심의 외교를 강화하는 한편 중러와의 외교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의 지배 등 우리 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적 가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국익과 합치한다. 외교 현장에서 이것이 위협받을 때는 단호히 지켜내야 한다. 다만 중러 등 체제·이념이 다른 국가와의 관계에서 가치와 외교 현실이 충돌할 때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와 기준을 분명히 설정해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국민 설득이나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가 어려워진다. 가령 중국의 인권 문제는 양자 차원에서 제기하는 것은 자제하되 다자 외교에서는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비판한다는 입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야 한다. 정권의 이념 성향이나 그때그때 상황 논리에 따라 무원칙한 결정을 내리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중국이 앞으로 대만을 침공할 것으로 보는가.

△중국이 시진핑 국가주석 1인 체제로 전환하면서 겪게 될 국내 정치적 난제들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 대만 통일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대만에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주한미군의 역할과 관련해 한미 간 인식 차이가 없도록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블록화가 심해질수록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

△기업들이 정부의 도움 없이 혼자 모든 결정을 내리고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는 세상이 됐다. 경제는 경제 논리, 안보는 안보 논리로 다루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미중 전략 경쟁의 핵심은 경제·기술력 우위 확보에 있다. 미국의 대중 전략에서 핵심은 중국을 ‘좁은 마당, 높은 담장’에 가둬 더 이상 크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과의 첨단 기술 협력 등 기회 요인을 적극 활용해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고 공급망 위축과 대중 관계 리스크 등 비용은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가 돼 경제·안보 통합 전략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도록 정책 조정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안보적 측면에서 다뤄야 할 경제 문제가 급증할 것이다.

-한국의 대중 무역이 적자로 전환하면서 구조적 위기에 몰렸다.

△중국 경제가 기술 집약형 산업구조로 전환하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기술·장비 수출을 통제하면서 양국 교역에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중 경제가 보완적 관계에서 경쟁적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제공하는 기회 요인을 잘 활용하면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를 늦추고 특정 분야에서는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핵심 전략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법·제도적 지원 장치를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줘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조언한다면.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 한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략적 명료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외 메시지나 외교적 수사가 너무 강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정책 내용과 외교적 수사를 구분해야 외교 공간의 확보가 용이해진다. 한미일 공조에 치중하다 보니 다소 소홀해진 대중러 외교와 관련해 구체적인 정책 이니셔티브도 제시할 때가 됐다.

◆He is…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외무 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들어선 뒤 외교통상부 지역통상국장, 주제네바 차석대사, 통상교섭조정관, 주스페인 대사, 개발협력대사를 거쳐 외교부 2차관, 주유엔 대사 등을 역임했다. 유엔평화구축위원회 의장과 유엔개발계획·유엔인구기금·유엔프로젝트조달기구 집행이사회 의장 등을 지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셋째 아들이다. 저서로 30여 년의 외교관 생활을 담은 ‘자존과 원칙의 힘’이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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