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을 엉문으로 번역하는데 영어 원어민이 유리하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편견이에요. 저를 보세요. 순수 한국인이지만 부커상 후보에 두 권을 동시에 올리지 않았나요. 번역지원 기관이 제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신간 에세이집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어크로스)’를 낸 안톤 허(본명 허정범) 번역가는 2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번역에 대한 정부의 지원 부족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가 하는 번역은 한국문학 수출이죠. 반도체나 자동차 등 다른 수출 산업 같은 지원이 필요해요”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보라 소설 ‘저주토끼’, 박상영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영어로 번역해 작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동시에 올린 한영 문학 번역가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책 ‘비욘드 더 스토리’도 영어로 번역했다.
책은 허 작가가 번역 외에 작가로서 낸 첫 출판물이다. 보통 번역가하면 외국 작품을 들여와 한국어로 번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허 작가의 일은 한국작품을 외국어(영어)로 번역하고 있다. 그만큼 어렵고 전문가도 부족하다.
그는 “번역가는 번역 책을 발굴하고 샘플을 만들고 해외 출판사를 찾는 과정을 모두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이른바 ‘맨땅에 헤딩’이다. 실제 번역 작업은 오히려 작은 일이다. 번역 기관의 지원은 절대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는 한국문학번역원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과거 한국문학번역원 아카데미를 수업할 때 저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받는 생활장학금도 못받았죠. 한국인을 외국인 학생의 들러리나 하수인쯤으로 취급한 거죠.”
‘한영 번역은 한국어를 잘 아는 미국인 등이 유리하기 때문에 기관들이 그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번역의 출발어(한국어)와 도착어(영어) 사용자가 누구든지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책에는 문학번역원이 지난해 부커상 시상식 출장 경비 지원금도 허 작가가 선결제하게 하고 3개월 뒤에 입금해 줬다는 일화도 나와 있다. 문학번역원에 대한 불만이 많은 듯하다고 하니 “제가 겪은 것 중에 책에 나온 것은 5%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문학 번역가 중에서 지명도가 높은 그가 이 정도이니 다른 번역가들의 어려움을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국내 전업 한영 문학 번역가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에요.”
허 작가는 내년 미국에서 첫 소설(영문) ‘Toward eternity’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이 책의 한국어 번역을 정보라 작가가 해요. 제가 정 작가 책을 영어로, 정 작가는 제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셈이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