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반도체 과외 받은 최태원, HBM 이어 3D패키징까지 넘본다

['칩 생태계' 넓히는 SK그룹]

반도체 석학 직접 만나 강연 경청

"기술 토론하고 공부하는 것 즐겨"

그룹 투자액 57% 142조 바탕

하이닉스 HBM 라인 2배 증설

내달 16일부터 CEO 세미나 개최





반도체 시장이 업황은 물론 기술 분야에서도 변곡점을 맞이한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술 공부와 트렌드 파악에 나섰다.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 성장과 세계 반도체 패권 다툼에서 SK그룹의 역할을 깊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최근 고려대 모 교수를 직접 만나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설명과 시장 기술 흐름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해당 교수는 미래 반도체 소자 구조 전문가로 한때 SK하이닉스 경영에도 참여했을 만큼 SK그룹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 회복의 키일 뿐더러 SK그룹의 핵심 산업이다. 특히 반도체는 미중의 패권 다툼의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노출돼 있다. 기술적·지정학적 분석과 판단이 그만큼 중요한 시기다. 더욱이 SK하이닉스의 경우 미국의 제재 대상인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에 회사 메모리가 탑재돼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미국이 해외 기업의 중국 설비투자를 옥죄기 위한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을 확정하면서 중국 우시에 생산 거점이 있는 SK하이닉스도 영향권에 들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미묘한 시기에 최 회장이 ‘반도체 과외’를 통해 SK하이닉스의 주요 사업인 메모리 제조 외에도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반도체 패키징 분야 전반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은 기술에 대해 학자만큼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사람들과 미래 반도체 기술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즐기고 경청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현장 경영에도 집중하고 있다. 15일에는 4개의 초대형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방문해 공사 현황을 점검했다. 이 클러스터는 2027년 첫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 회장은 “용인 클러스터는 SK하이닉스 역사상 가장 계획적이고도 전략적으로 추진되는 프로젝트”라며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는 것 이상의 도전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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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직접 나서기도 했다. 최 회장은 6월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등과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글로벌 포럼’을 개최했는데 당시 미국 현지 인재들을 초청해 SK의 전략과 기술을 논의하고 채용까지 연계하기도 했다.

SK그룹은 반도체 투자에도 집중하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5년간 총 247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57.6%인 142조 2000억 원을 반도체와 소재 분야에 쏟아붓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칩 제조는 물론 SK㈜ 머티리얼즈·SK실트론 등 소재 회사에도 집중 투자해 생태계 수직 계열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SK하이닉스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인공지능(AI) 시대 개화로 주목받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업계 1위로 올라서면서 메모리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낸드 제조가 주력인 청주공장 일부를 개조하는 등 올해만 HBM 라인을 기존의 2배 수준으로 증설하는 방안을 꾀하고 있다. 단순 메모리 패키징을 넘어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메모리 등 하나의 칩처럼 이어 붙이는 2.5D, 3D 패키징과 같은 고도화한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놓고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은 다음 달 16일부터 18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매년 경영 전략 구상을 위해 마련하는 CEO 세미나를 개최한다. 최 회장은 각계에서 수집한 인사이트와 지식을 바탕으로 계열사 CEO 등 주요 경영진 30명과 함께 그룹 화두인 ‘딥체인지’ 반도체 육성 방향 등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최 회장이 특유의 속도감 있는 의사 결정과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반도체 사업을 키워왔다”며 "향후 반도체 신사업과 투자 등을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해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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