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량 분석을 주로 이용하는 필자의 연구실에 신입 대학원생들이 들어오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통계와 숫자를 해석해본 경험이 없어 통계 패키지를 무작정 돌려 나온 결과를 연구실 세미나에서 자신 있게 발표한다. 그리고는 그 숫자들의 현실적 의미에 대한 비판적 검토 없이 해석하기 급급했다는 필자의 공격에 상처를 입는다. 세상에서 파악되는 숫자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과도하게 왜곡되거나 조작된 숫자들은 어딘가 주위의 숫자들에 어색함을 만들어 그 숫자의 비합리성에 관한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번 부동산 통계 조작과 관련된 감사원의 발표를 보면 청와대 정책 결정자들은 통계를 자신의 판단을 돌이켜 검증하는 과정이 아닌 자신의 욕심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가득했다. 청와대의 욕심을 가상현실로 만드는 해결사 역할이 부여된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의 고군분투는 애처로울 만큼 치열했다. 문재인 정부 중반 잠깐의 하락기 이후 반등기에 변동률을 하락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동산원에 요구할 때 ‘우리 라인 다 죽습니다’라는 표현에 모든 게 담겨 있다. 잘나가는 핵심 부서 공무원의 생존권이 걸린 문제였다. 그래도 ‘영혼 없는 공무원’이라는 자조를 넘어 현명하고 뚝심이 있어야 했다.
통계 생산 기관으로서의 부동산원 또한 자기 합리화에 급급했다. 관련 통계의 전신인 국민은행지수를 받아오면서 10억 원 남짓한 과제를 100억 원에 가까운 부동산원의 주요 수입원으로 키웠다. 그런 선택을 한 순간 부동산원은 국토부나 정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올가미에 씌워졌다. 사실 주간(월간도 비슷하게) 지수의 조작 혹은 조정은 정말 쉬운 과정이다. ‘100개 단지+평형’이라는 조사 단위 중 1개만 10억 원에서 5000만 원을 올리면 평균 변동률 개념의 가격지수는 0.05% 상승으로 산정된다. 모든 100개 조사 대상의 시세가 0.05%인 50만 원씩 올랐다고 조사되지 않는다. 부동산원 조사원에게 1개 표본의 확신 없는 시세를 조정하는 것은 죄책감조차 느낄 필요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또 청와대와 국토부의 입김으로 누적된 표본 조사가격의 저평가 문제를 감추기 위해 빈번한 표본 확대 교체를 넘어 교체되지 않은 표본의 과거 가격까지 바꾸는 잘못까지 범했다.
조직 및 예산의 독립성은 통계 개선의 기본조건이다. 외부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시세 조사 기반을 유지하려면 신뢰성을 계속 점검받을 수 있도록 표본 조사가격을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동산원은 아파트 동·호 단위로 특정해 시세를 조사하는 만큼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있어 가능하지 않다고 항변할 것이다. 사실 아파트 동·호를 특정해 조사하는 것은 국민은행이나 부동산114도 과거 시도 이후 버린 실효성 없는 논리이지만 그렇게 항변한다면 특정 단지, 특정 평형의 대표 가격으로 명명해 공표해도 상관없다. 주택가격동향조사의 실효성을 회복하려면 엉망이 된 과거지수의 합리적인 갱신 또한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외부 입김에 취약한 시세 조사에서 벗어나 공개된 실거래가 자료를 기반으로 지수를 확대해 대표 지수로 운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