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일대일로( 一帶一路·육상 해상 실크로드)와 불공정한 보조금 살포 정책에 맞서기 위해 국제기구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
유명무실해진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WB),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이 제 기능을 찾도록 미국과 서방 진영 주도로 조직과 업무를 재편하고 필요하다면 자본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제기구를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 기조에 맞춰 변화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4일(현지 시간) 통상 전문 매체 인사이드유에스트레이드 등에 따르면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2일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포럼에서 중국의 불공정한 산업 정책 및 무역 관행을 언급하며 WTO의 개혁 필요성을 제기했다.
타이 대표는 “특정 세력이 주요 산업을 장악하고, 외국 경쟁 업체를 차별하고,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가격 구조를 왜곡한다”면서 “(이런 기업들이) 많은 상품과 기술에 대한 지배적인 공급 업체가 되면서 공급망의 취약성을 야기하고 이는 경제적 강압의 지렛대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 이름을 특정하지 않았으나 이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WTO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정한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이 대표는 또 “경제 대국이 빈곤한 나라와 같은 상황이라고 주장하며 제도를 악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세계 2위의 경제적 지위에 오른 중국이 여전히 ‘자국 기업 우대’가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개발도상국 대우를 받고 있는 WTO 상황을 꼬집었다.
타이 대표의 이 같은 주장은 변화된 경제 및 안보 환경에 맞춰 국제기구를 재편해 세계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바이든 정부 외교 정책의 연장선이다. WTO는 지난 30년간 세계 무역 시대를 이끌어왔으나 강대국 패권 전쟁과 각종 관세 분쟁 여파로 영향력이 급속히 악화했고 어떤 방식으로든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바이든 정부는 아울러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개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 최근 유엔 총회를 계기로 미 정부가 세계은행에 25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하는 방안을 미 의회에 요청했다. 주요 20개국(G20)도 자본 확충에 동참시켜 WB의 개발 및 인프라 금융을 크게 확대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구상이다.
이처럼 다자개발은행 개혁에 바이든 정부가 속도를 내는 것은 중국의 일대일로가 개도국의 발전을 돕기보다 해당 국가를 중국에 종속시키는 ‘부채 함정 외교’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막강한 자본력에 대응하기 위해 WB가 민간 금융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아제이 방가 WB 총재는 “다자개발은행, 심지어 정부도 복합적인 위기에 대응할 자금은 충분하지 않다”면서 “민간 부문의 자본과 독창성을 게임에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남발하는 유엔 안보리 개혁은 바이든 정부에 있어 가장 민감하면서도 절박한 과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와 관련, 최근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유엔 총회가 3분의 2 이상의 의결로 안보리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면서도 안보리 상임이사국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명확히 하고 있다. 일본·인도·독일·브라질을 포함해 최대 6개의 신규 상임이사국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안보리는 그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이 같은 국제기구 개혁 노력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리처드 고완 국제위기그룹 유엔 국장은 “유엔 이사회 개혁은 외교의 말벌집으로 이사회를 재구성하거나 거부권 규정을 변경하는 데 따르는 절차적·정치적 장애물이 엄청나게 높다”고 말했다. 마수드 아메드 국제개발센터 회장도 다자은행 개혁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돌아온 것을 환영하면서도 미국이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인지, 다른 국가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