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의 핵심 인력인 육·해·공군 사관학교 출신 임관 장교 가운데 장기복무 자원으로 분류된 인원이 의무복무기간을 채우지 않고 스스로 군문(軍門)을 박차가 나간 ‘5년 차 조기’ 전역자는 최근 10년간 450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해군사관학교 출신 임관 장교의 조기 전역자 비율은 유일하게 10%가 넘어가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10년간 육·해·공 사관학교 출신 임관 장교의 5년 차 전역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육·해·공 사관학교 출신 초급 장교 가운데 의무복무기간을 채우지도 않고 중도에 포기하고 조기에 군을 떠난 인원이 452명에 달했다.
5년 차 전역자 비율은 육군사관학교 198명으로 9.3%, 공군사관학교 116명으로 7.8%를 기록했다. 반면 해군사관학교는 임관 장교 중 11.1%에 달하는 138명이 5년 차 전역을 신청해 타군 사관학교에 비해 유독 높았다.
5년차 전역은 장기복무가 확정된 초급 장교가 생각이 바뀌어 장기복무를 포기할 경우 의무복무기간을 채우지 않고 임관 5년 차에 조기전역할 기회를 주는 제도다. 만약 5년 차 전역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할 경우, 남은 5년을 마저 복무해야 한다.
육사 출신 장교의 5년차 전역률은 2014년 14.6%에서 2018년 6.8%로 낮아졌다가 2019년 7.6%로 증가세로 돌아선 이후 지난해 9.3%, 올해 9.8%로 늘어나는 추세다.
해사 출신 장교의 5년차 전역률 역시 2014년 19.2%%에서 2016년 5.5%로 하락했다가 2020년 13%로 다시 가파른 상승세로 보인 후 2021년 9.7%, 2022년 11.7%, 2023년 9.2%로 10% 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공사 출신 장교의 5년차 전역률은 2014년 8.2%에서 2019년 12.9%로 상승하다가 2021년 5.65%로 떨어진 후, 2022년 9.1% 급증했다 올해 4.4%로 다시 낮아졌다
해사 출신 초급 장교의 조기 전역률이 높은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해군 장교들의 근무 환경이 타군에 비해 불만족스럽다는 증거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성 의원에 따르면 해군(대위·5호봉)과 해경(경감·5호봉) 함정근무자가 받게 되는 한 달 치 수당을 서로 비교해하면 월 100만원 이상 차이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 의원은 “해군이 타군에 비해 함정 근무 등 장기간 가정을 떠나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에 함정근무자 수당은 해경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며 “숙련된 해군장교의 확보를 위해 함정근무자들의 수당 현실화 등 해군장교들의 처우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
사관생도 1명을 양성하는 데는 4년간 통상 2억원 이상의 국비가 투입된다. 급여(품위유지비)와 급식, 피복, 개인용품, 탄약, 교육자료 등 직접비와 인력 운영, 장비 및 시설유지, 유류 등 간접비를 포함한 금액이다.
이런 탓에 사관학교는 국가 예산으로 정예장교를 육성하는 기관인데 육·해·공군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조기 전역하는 것은 예산낭비이자 정책의 실패로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군 간부로 성장할 인력 배출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젊은 장교의 인재 풀(Pool) 자체가 얇아지는 것을 고려하면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문이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실은 “국방부와 각 군은 정확한 조직 진단을 통해 현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고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 스스로 군문을 나서는 초급 장교들을 최소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5년차 전역률이 증가하는 원인에 대해 초급 장교 처우 문제가 거론된다. 정부의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에 따라 병장 월급(지원금 포함)은 2025년 205만원까지 오른다. 하지만 초급 장교 1호봉 월급은 178만원으로 공무원 임금 인상률을 따를 경우 2025년 역전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국방연구원 한 연구위원은 “군의 미래가 없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조기 전역을 통한 진로변경 희망자가 늘고 있다”며 “복무 불안감과 복지여건에 대한 불만족 등으로 복무 의욕이 감소해 5년차 전역자가 증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5년차 전역 제도에 대한 개선도 주장도 만만치 않다. 사관학교 출신 초급 장교가 5년차에 전역하지 못하면 다시 5년을 복무해 10년 의무 기간을 채워야 한다. 과연 마음이 떠난 군 장교를 붙잡아 놓는 것만이 능사인지도 생각볼 문제다. 예컨대, 미국 육사인 웨스트포인트의 경우 전역이 상당히 손쉽다. 사회로 나간다고 하면 말리지 않고 오히려 사회에 나가서 ‘리더’가 되라고 권유한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 관계자는 “조기 전역 방지대책으로 초급장교의 정신교육 강화와 근무 및 복지여건 보장으로 복무의욕을 고취하고, 5년차 전역 제한 기준과 통제 범위를 강화해 우수 자원의 조기 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군 승진에서 뚜렷하게 우대받는 사관학교 출신 장교의 경우 열악한 처우 못지않게 달라진 불안한 군 미래에 대한 실망감이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장 장교로 임관하지 직전인 생도 시절에 자진해서 퇴교하고 군문을 떠다는 추세는 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육·해·공군 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도중에 자퇴(自退)하는 생도들이 늘어나 지난 5년간 스스로 교정을 떠난 생도가 30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이 국방부에서 받은 ‘각 군 사관학교 자진 퇴교자 현황’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올해 9월까지 자퇴한 생도는 321명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19년 34명, 2020년 40명, 2021년 52명, 2022년 100명, 올해 9월 기준 95명이 각각 학교를 떠났다.
이런 경향은 국민의힘 임병헌 의원이 올해 초 국방부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육군사관학교 중도 퇴교 현황 자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육사 자퇴 생도는 2018년 9명, 2019년 17명, 2020년 19명, 2021년 28명, 2022년 63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는 63명으로 5년 만에 7배로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올해 9월까지는 46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학년별로는 최근 5년간 1학년 생도의 자퇴 비율이 가장 높았다. 지난해엔 1학년 자퇴 생도가 32명으로, 이는 육군사관학교 학년별 정원(330명)의 약 10%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해 육사 자퇴 생도 63명의 퇴학 사유를 보면, 진로 변경 57명이 가장 많았다. 뒤 이어 군 문화 부적응 3명, 건강상 문제 3명으로 이 중 진로 변경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진로 변경으로 자퇴 생도는 일반적으로 타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 입시에 재도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 의원은 “정확한 조직 진단을 통해 현 상황을 분석하고 자퇴 생도들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군에 대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조짐은 육·해·공 사관학교의 지원 경쟁률에도 이미 반영되고 있다. 최근 5년간 지원 경쟁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잇따른 정치적 이슈로 흔들리고 있는 군의 위상과 지위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 년간 육·해·공군사관학교 경쟁률’ 자료에 따르면 육군사관학교 경쟁률은 2020년 44.4대1에서 2023년 25.8대1로 41.9% 하락했다.
2019년 38.5대1이었던 해군사관학교의 경쟁률도 51.4% 떨어져 2023년 18.7대1 까지 내려갔다. 공군사관학교는 2020년 48.7대1에서 2023년 21.4대1으로 56.1% 하락했다. 무엇보다 공군사관학교는 2019년 경쟁률이 120.2대 1에 달했지만, 2023년 47.7대1로 60.3% 하락하며 3군 중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사관학교 뿐만 아니라 타 장교 선발 과정의 경쟁률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육군에서 장교를 양성하는 과정은 육군사관학교를 제외하고 3사관학교 , ROTC, 학사장교 , 간부사관이 있는데, 이들 최근 5년간 경쟁률도 간부사관을 제외하고 모두 떨어졌다. 학사장교의 경쟁률은 2018년 4.4대1이었지만, 2022년 1.5대1로 65.9% 하락했다. 같은 기간 공군 ROTC 경쟁률도 2018년 3.6대 1에서 2.7대1로 떨어졌다 .
기동민 의원은 “사관학교와 타 장교 양성 과정에 대한 지원 경쟁률 하락은 흔들리는 군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라며 “초급간부 수당 인상 등 다양한 유인책도 필요하지만, 군 복무에 대한 명예와 자부심을 높이는 근본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