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버리면 쓰레기지만 재활용하면 보석이죠”

폐우유팩 1만 개 모은 서울 은평구 자원관리사 박정희씨

카페·골목 돌아다니며 모은 우유팩 집에서 일일이 씻고 말려

박정희씨가 모은 우유팩은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은평구박정희씨가 모은 우유팩은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은평구




“하나뿐인 삶의 터전인 지구를 어떻게 하면 지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버려진 우유팩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서울 은평구 신사2동에서 통장과 ‘그린모아모아’ 자원관리사로 활동하는 박정희씨는 지난 2021년부터 ‘그린모아모아’ 자원관리사로 활동하며 남다른 열정으로 환경보호 활동의 귀감이 되고 있다.

박정현(왼쪽)씨가 골목길에서 모은 우유팩은 이송차량에 담고 있다. 사진제공=은평구박정현(왼쪽)씨가 골목길에서 모은 우유팩은 이송차량에 담고 있다. 사진제공=은평구


‘그린모아모아’ 사업은 일반주택 비중이 높은 은평구가 주민들의 올바른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유도하기 위해 2019년부터 시행 중인 정책이다. 주 1회 150여 개 지정장소를 두고 운영하며, 현장에서는 박씨와 같은 자원관리자들이 주민들에게 배출 방법 교육 등으로 분리배출을 돕고 있다.

박씨가 자원관리사 활동을 시작한 후 지난 3년간 모은 재활용품만 무려 페트병 1.5톤, 우유팩 1만 개에 달한다. 이렇게 모은 재활용품은 개인 시간을 써서 모은 것들로 모두 사회에 환원한다. 동네를 깨끗하게 만들자는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한 공익 활동이다.

박씨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일회용품 사용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재활용 가능한 일회용품이 그냥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보면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며 “그때부터 페트병부터 시작해 부가가치가 높은 재활용품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모으기만 한 게 아니다. 재활용품에 묻은 이물질을 일일이 물로 씻거나 페트병에 붙은 라벨지를 뜯는 등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대로 재활용되려면 이물질이나 다른 소재가 섞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수거 활동 대부분은 카페, 주택, 골목 등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처음에는 재활용 가치가 높은 투명 페트병, 공병 등을 모았지만, 최근 동네에 작은 카페부터 프렌차이즈 카페까지 많이 생기면서 올해부턴 우유팩도 모으고 있다.

그는 “우유팩은 고급 화장지 원료로 재생 가치가 높은데 잘 헹궈서 배출하지 않으면 재활용되지 않고 일반 쓰레기로 처리된다”며 “이렇게 버려지면 아까울 뿐 아니라 지구가 병드는 이유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버리면 쓰레기지만 재활용하면 보석이다”고 재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씨는 동네에 카페가 새로 생기면 찾아가서 자원관리사임을 밝히고 올바른 재활용 분리배출법에 대해 안내하곤 했다. 다만 업종 특성상 제대로 된 분리배출을 기대하긴 어려운 점이 있어, 카페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우유팩을 직접 수거해 집으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모은 우유팩은 1평 남짓한 공간에서 쭈그려 앉아 일일이 물로 씻고, 말리는 반복 작업을 거친다. 물을 온전히 말리는 데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 날씨가 무더울 때는 팩에 남은 우유 찌꺼기에서 나는 냄새가 작업할 때 가장 힘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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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박씨가 모은 우유팩만 1만 개에 달한다. 모은 우유팩 일부는 주 1회 그린모아모아 운영 현장에 재활용품으로 내놓기도 했지만 양이 많아 집 창고에 남은 우유팩 더미는 구청에서 거둬 가곤 한다.

그가 처음 자원관리사로 나서게 된 계기는 신사2동 박은미 주민자치회장의 권유 때문이었다. 박씨는 신사2동 통장으로서 평상시에도 지역에 도움 되는 일이라면 적극 나서곤 하는데 동네를 깨끗이 만들자는 취지가 좋아 자원관리사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박씨의 남편은 혹여나 다치거나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수거 활동에 반대했다. 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딸은 엄마의 선한 뜻에 동의하며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그의 딸은 출근하면서 소주병, 우유팩 등 ‘보석’이 보이면 엄마에게 종종 알리곤 했다. 퇴근 후엔 엄마 박 씨와 함께 동네를 돌아다니며 ‘보석 찾기’에 동참하고 있다.

자원순환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지닌 두 모녀의 선한 영향력 때문인지 신사2동 동네 곳곳은 날로 깨끗해졌다.

김영태 신사2동 복지행정팀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동네에 청소할 곳이 많아 보였다”며 “그런데 여러 자원관리사의 노력과 지역 주민들의 향상된 시민의식 덕분에 거리가 정말 많이 깨끗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임춘재 신사2동장은 “그린모아모아 사업을 시작한 후 거리가 정돈된 느낌을 많이 받고 있다”면서 “더욱이 박정희님과 같은 자원관리사 분들과 전 직원이 합심해 노력하니, 동네가 점점 쾌적해지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쓰레기에서 무언가 찾고 있는 박씨를 여러 차례 본 인근 모 카페 업주는 그녀에게 뭘 하는지 물어본 적도 있다고 한다. 박씨의 의도를 알게 된 카페 업주는 그때부터 가게에서 나온 우유팩을 모아 그녀에게 꾸준히 가져다주고 있다.

박씨는 재활용품을 가져온 업주나 주민들에게는 본인이 직접 뜨개질한 수세미나 종량제 봉투 등을 고맙다고 건네기도 한다. 종량제 봉투는 그린모아모아 사업에 재활용품을 내놓고 받은 보상품인데, 정작 본인은 종량제 봉투를 쓸 일이 없다고 한다.

그는 “생활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잘 살펴보면 실상 모두 재활용할 수 있어 버릴 것은 없다”면서 “우유팩 외에도 부가가치가 높은 투명 페트병, 공병 등도 함께 모으고 있는데 바로 현금화가 가능한 공병 등은 연말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사업인 ‘따뜻한 겨울나기’에 후원한다”고 전했다.

동네 주민들은 박씨가 평상시에도 동네를 위해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칭찬한다. 박씨는 자원순환관리사를 비롯해 통장, 새마을부녀회, 여성민방위대, 적십자, 자원봉사센터 등에서 지역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박씨는 자원관리사 역할과 함께 재활용품 수거 활동도 지속해서 이어갈 생각이다. 그는 “우리가 사는 지구는 사람이 만들어 낸 쓰레기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데 사람이 만든 문제는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작은 행동이지만 나부터 나서서 지구 살리기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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