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만한 케이팝 아티스트, 허지영 기자가 케-해석 해봤습니다!
2년간 이어진 걸그룹 이달의 소녀(LOONA) 전속 계약 분쟁이 마무리된 모양새다. 2021년 츄가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이하, 블록베리)에 불공정 정산 등으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6월 멤버 12명이 모두 블록베리를 떠난 것. 블록베리가 츄를 대상으로 항소심을 제기했지만, 소속사에 쉽지 않은 법적 분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이달의 소녀는 역사로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멤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달의 소녀를 계승하고 있다. 완전체를 다시 보기는 어려워졌지만 열두 멤버는 여전히 이달의 소녀를 긍정하며 제2막을 준비하고 있다.
◇블록베리의 자충수, 100억 원 그룹의 씁쓸한 말로 = 2016년, 자본금 약 100억 원을 투자한 초대형 걸그룹 이달의 소녀(LOONA)가 데뷔했다. 희진, 현진, 하슬, 여진, 김립, 진솔, 최리, 이브, 츄, 고원, 올리비아 혜로 구성된 이 그룹은 12명이 각각 개인 앨범을 발매 후 완전체로 데뷔해 주목받았다. 방대한 세계관으로 콘셉추얼한 비주얼을 내세우고, 자신감·당당함을 내세워 공감을 샀다. 차근차근 성장하는 듯했으나, 소속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와의 전속 계약 분쟁이 불거지며 결국 멤버 모두가 소속사와 법적 분쟁을 벌이게 됐다.
시작은 츄였다. 그는 2021년 12월 소속사 블록베리를 대상으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원인은 불공정한 정산이었다. 수익 배분 비율은 회사가 7, 츄가 3인데 연예 활동에 드는 비용은 5:5로 산정된 것이다. 츄는 적게 가져가고 많이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듬해 3월 법원은 츄의 손을 들어줬고 블록베리는 수익 배분 비율을 7(츄):3(회사)으로 바꿨다.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신뢰 관계가 파탄난 양측의 갈등은 깊어졌고, 결국 블록베리는 "츄가 스태프에게 갑질을 했다"는 원인을 내세우며 츄를 그룹에서 퇴출했다.
그러나 이는 블록베리의 자충수였다. 평소 업계에서 평판이 좋은 츄에게 '인성 논란'을 씌우려는 시도는 통하지 않았다. 팬덤과 대중, 업계는 츄의 인성보다 블록베리의 불공정한 계약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츄는 그해 6월 응원과 우려의 시선을 받으며 바이포엠 스튜디오로 이적해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블록베리는 전속 계약 분쟁 이면에 츄와 바이포엠 사이에 템퍼링(전속 계약 종료 전 사전 접촉)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는 '증거 부족' 결론을 낸 바 있다.
츄의 도화선은 멤버들에게로 번졌다. 블록베리는 츄가 없는 11인조 이달의 소녀를 '완전체'라 명했으나 이는 팬에게도, 멤버에게도 공감을 사지 못했다. 결국 멤버들 역시 불공정산 정산 등을 이유로 차례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올해 6월 고원·여진·올리비아혜·이브·하슬의 승소를 끝으로 12인 모두가 블록베리에서 벗어나게 됐다.
◇'오빛' 운동회 열고 유닛명도 그대로…이달소 ‘물려받기' = 뿔뿔히 흩어지나 했지만, 고난을 함께 이겨낸 멤버들의 의리는 끈끈했다. 멤버들이 대부분 같은 소속사로 이적한 것이다. 희진·김립·진솔·최리·하슬이 모드하우스로, 현진·여진·비비·고원·혜주(올리비아 혜)가 씨티디이엔엠(CTDENM)으로 나란히 이적했다. 두 소속사는 각각 이달의 소녀와 인연이 있다. 모드하우스는 이달의 소녀 데뷔 프로젝트부터 미니 2집 'X X'까지 그룹의 제작과 기획을 총괄한 베테랑 연예제작자 정병기(제이든 정)가 세운 소속사다. 씨티디이엔엠 역시 블록베리에서 이달의 소녀 기획·운영을 담당했던 연예제작자 윤도연 대표가 지난해 새롭게 설립한 회사다.
모드하우스에 몸담은 희진·하슬·김립·진솔·최리는 지난 4월 아르테미스(ARTMS)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스 신화의 신인 '아르테미스'에서 착안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공인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정 대표는 이달의 소녀의 세계관인 '루나버스(LOONAverse)'를 만든 장본인으로, 달을 뜻하는 'luna'를 응용해 'LOONA'를 만들었다. 단어에서도 나타나듯 세계관의 핵심 키워드는 '달'이다. 아르테미스에서도 '달'은 중요한 오브제로 나타난다. 공식 이미지에는 '우리는 함께, 다시 달과 그 너머를 향해 나아갑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열두 개로 나뉘어진 달의 모습이 등장한다. 아울러 모드하우스는 이달의 소녀의 첫 유닛이었던 '오드 아이 서클(ODD EYE CIRCLE)' 상표권을 인수하고 컴백시키기도 했다. 지난 7월 발매된 신곡 '에어 포스 원(Air Force One)' 뮤직비디오에서는 '루나버스'를 연상시키는 달, 왕관 등의 디테일한 소품이 등장한다. 이러한 '떡밥' 덕에 현재 아르테미스는 정 대표의 진두지휘 아래 이달의 소녀를 적통으로 계승했다고 평가받는다.
씨티디이엔엠으로 이적한 현진, 여진, 비비, 고원, 혜주도 이달의 소녀의 정체성을 다수 가져왔다. 그룹명 '루셈블(Loossemble)'은 '루나가 모였다(LOONA ASSEMBLE)'라는 뜻으로, 이달의 소녀의 루나버스 세계관을 충실히 긍정하는 모양새다. 이들 팬덤명은 '크루(C.Loo)'인데, '달이 지구 곁을 공전하는 것처럼 크루가 항상 루셈블과 함께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르테미스와 마찬가지로 루셈블 역시 '달'을 전면에 배치한 것이다. 아울러 씨티디이엔엠은 지난 7월경 이달의 소녀의 팬덤 명인 '오빛' 상표권을 인수했다. 덕분에 멤버들은 전속 계약 소송이 한 차례 마무리된 후 한 달 만에 '달려라 오빛'이라는 콘텐츠로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이달소 '달 세계관' 떠난 두 사람은 어디로? = 전속 계약 분쟁, '갑질' 의혹 등으로 2년간 속앓이를 한 츄는 달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난 4월 신생 기획사 ATRP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ATRP는 WM엔터테인먼트에서 B1A4, 오마이걸, 온앤오프 등 다수 아이돌을 직접 발굴하고 기획한 김진미 대표가 설립한 신생 기획사다. 츄와 템퍼링 의혹을 받던 바이포엠 스튜디오가 대주주로 있으나 소속사는 "투자만 받았을 뿐"이라며 선을 그은 바 있다. 츄는 오는 18일 첫 솔로 앨범 '하울(Howl)'을 발매하고 본격적인 솔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이달의 소녀 인기 멤버였던 이브는 유일하게 아직 거취를 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직 회사는 없지만 신중하게 여러 회사를 만나보며 저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달의 소녀 당시 곡 '플레이백(Playback)' 작사에 참여한 걸 계기로 곡 작업에도 박차를 가해 루셈블에게 곡 '스트로베리 소다(Strawberry soda)'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 곡은 루셈블의 동명 데뷔 앨범 수록곡에 실렸다.
◇'12인조 완전체' 다시 볼 수 있을까 = 크게 네 갈래로 흩어진 멤버들은 각자 제2막의 연예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서는 오드아이서클이 지난 7월 신보 '버전 업(Version Up)'을 발매했다. 오드아이서클은 이달의 소녀가 지난 2017년 두 번째로 선보였던 유닛으로, 이들은 2017년 미니 1집 '믹스&매치(Mix&Match)' 이후 무려 7년 만의 새 앨범을 내게 된 셈이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다음 주자는 희진이다. 그는 오는 31일 신보 'K'를 발매하고 솔로 가수로 데뷔한다. 하슬은 지난달 국내에서 첫 소극장 콘서트 '뮤직 스튜디오 81.8Hz'를 개최하고 팬들을 만났다. 다만 희진이 계속해서 솔로로 활동할지는 미지수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는 유닛 구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이달의 소녀가 해체한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희진은 이번 달 매체 인터뷰를 통해 "팀이 해체한 개념도 아니었고, 멤버 간의 문제가 있어서 그런 상황이 일어난 게 아니라, 외부적인 문제가 컸던 억울한 문제"라고 짚었다. 김립은 오드아이서클 컴백 쇼케이스에서 "이달의 소녀는 해체한 그룹이 아니다.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루셈블 여진도 데뷔 쇼케이스에서 "저희끼리 연락도 잘하고 있고, 열린 마음으로 완전체를 기대하고 있다"고 기대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모드하우스의 정 대표가 이달의 소녀 12명을 모두 영입할 계획이 있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공식 티저 이미지의 달이 12개인 점이나, 소속사 측에서 적극적으로 루나버스 세계관을 계승하려는 의지 등을 본 것. 정 대표는 멤버들의 소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 3월 영국 매체 NME를 통해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이달의 소녀는 완전체일 때 가장 빛날 것"이라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타 멤버들이 새롭게 둥지를 틀고 활동을 시작한 만큼 당분간 완전체 활동은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멤버들은 무대를 향한 열정과 멤버 간의 끈끈한 의리를 바탕으로, 새로우면서도 팬들이 그리워하는 익숙한 모습으로 이달의 소녀의 명맥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