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 시간)에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로부터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하기로 발표한 가운데 이란 최고지도자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응해야 한다며 개입 의지를 내비쳤다. 확전 위험이 커진 상황에 유엔이 식량과 연료 모두 바닥난 가자지구의 한계를 경고하고 나서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요르단·이집트 정상과도 만나 확전을 막고 전쟁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을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7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과 회담한 후 예루살렘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는 가자지구 민간인에게 구호 물품을 제공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유엔 산하 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과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에 따르면 이날 기준 가자지구 내 식량 재고는 4~5일 버틸 수준이며 모든 병원의 연료 비축량은 24시간 내 고갈될 상황에 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이스라엘의 전쟁 목표와 전략에 대한 포괄적 브리핑을 받고 가자지구 민간인 지원 방안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 제거’를 위한 이스라엘의 작전에는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되 민간인 피해 최소화 방안을 촉구하는 행보인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의 지상전이 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위험이 도사린 여행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이후 이스라엘의 지상전이 시작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이스라엘에 작전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스라엘방위군(IDF) 대변인인 조너선 콘리커스 중령도 17일 X(옛 트위터)에서 진행한 언론 라이브 브리핑에서 ‘바이든의 방문이 가자지구 지상 작전 일정(타이밍)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CNN 기자의 질문에 “지켜봐야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바이든 대통령의 방문 목적은 이스라엘을 방해하는(hinder) 것이 아니라 확전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 방문 이후 인근 중동 국가 정상들과 만나 가자지구 민간인 지원책과 전쟁의 ‘출구전략’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마무드 아바스 PA 수반을 만나는 것은 그간 강조해온 ‘2개 국가(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해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CBS 뉴스 인터뷰에서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을 대표하지 않는다면서 “팔레스타인 국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유일한 통로인 라파 국경이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중동 순방과 더불어 개방될지도 주목된다. 미국의 끈질긴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입장이 부딪히며 현재 라파 국경 인근에는 수만 명의 피란민과 구호물자의 발이 묶여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이 협상을 주도하기 위해 중동을 방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과 맞물려 미 국방부도 인근의 전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2000여 명의 해병대와 수병으로 구성된 미 해병 신속대응부대가 이스라엘 인근에서 집결 중인 미 항공모함 전단 등에 합류할 예정이다. 워싱턴포스트(WP)도 이날 군 당국자를 인용해 현재 4000명 이상의 미 해군이 이스라엘 연안 미군 함대에 합류할 예정이며 세 번째 항공모함 전단이 이스라엘로 이동하기 위해 지중해에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억제력 확장에도 불구하고 이란은 이스라엘의 지상전만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 계획이 발표된 후 로이터통신이 인용한 이란 국영방송에 따르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할리 하메네이는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란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팔레스타인인들을 겨눈 범죄와 관련해 심판받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도 자국 국영방송에서 “시오니스트 정권이 가자지구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몇 시간 안에 저항 전선에 의해 ‘선제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미르압돌라히안 장관이 언급한 저항 전선은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유력해 보인다. 하마스도 이날 TV로 성명을 발표하며 이스라엘과 지상전을 치를 준비가 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 군사 조직 알카삼 여단의 대변인 아부 오바이다는 “우리 국민을 상대로 지상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점령자(이스라엘)의 위협은 두렵지 않으며 우리는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 가자지구에 있는 인질은 200~250명 선이며 이 중 200명은 알카삼 여단이, 나머지 인원은 다른 파벌이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마스는 이날 이스라엘 기습 공격 당시 붙잡은 인질의 치료 장면을 담은 영상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납치한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이스라엘에 수감된 팔레스타인인 6000명의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