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실적 악화에 지방재정을 떠받치던 지방소득세가 급감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시의 경우 법인지방소득세로 지난해 2710억 원을 걷었지만 내년에는 520억 원만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경기 부진으로 이천에 본사와 사업장이 있는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급감한 탓이다. 경기도 화성·평택, 전남 여수·광양 등 이런 도시가 하나둘이 아니다. 가뜩이나 세수 펑크로 지방에 교부되는 세금이 줄어드는 판에 법인지방소득세마저 크게 감소하며 이른바 ‘부자’ 지방 도시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살림의 원천인 기업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SK하이닉스 사업장이 있는 이천시의 내년도 법인지방소득세 수입은 520억 원에 그칠 것으로 추계됐다. 2022년 2710억 원, 올해 1708억 원에서 또다시 줄어드는 것이다.
삼성전자 사업장이 있는 화성시의 법인지방소득세도 2022년 5594억 원에서 내년에는 2600억 원으로 반 토막 나고 평택시 역시 2674억 원에서 1590억 원으로 쪼그라든다. GS칼텍스와 포스코가 있는 여수와 광양도 같은 기간 각각 1503억 원, 1121억 원에서 603억 원, 300억 원으로 급감한다.
세수 펑크로 중앙정부의 지방교부세 감소가 불가피한 가운데 지방소득세마저 줄어들자 각 지자체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시 금고에 잔액이 없어 공무원 월급을 줄 수 없다’는 소문이 돌던 경기도 의정부시는 부랴부랴 “331억 원의 지방교부세 감소가 예상되지만 재정안정화기금 투입과 불용(집행하기로 했던 사업을 하지 않음)을 통해 세입 축소에 대응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홍성국 의원은 “지방재정이 결국 기업 활동 여건으로 이어지는 만큼 지역 경제 비상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면서 “특히 취약 계층 보호 사업 등에 차질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법인세같이 산업 사이클에 따라 진폭이 있는 재원은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것이 맞다”며 “기업이 발전해야 기초자치단체의 재정도 탄탄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러움 사던 지자체도 '돈가뭄'…"기업규제 풀어야 지방살림 핀다"
경기 의정부시는 지난주 ‘돈이 없어 공무원에게 월급을 주기도 어려운 형편’이라는 소문에 홍역을 치렀다. 의정부시는 ‘시 금고에 잔액이 없어 공무원 월급을 못 준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지방교부세가 크게 줄며 매주 두 차례 특별대책회의를 열고 재정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김동근 의정부시장은 17일 “내년 재정 운용이 크게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 필수 사업과 의무·법정 경비를 제외한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구조 조정할 것”이라 밝혔다. 경기 의정부시의 재정자립도는 22%에 불과하다.
지방소득세가 많이 들어와 재정자립도가 높은 시에서도 재정위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건실한 기업이 역내에 있어 ‘부자 지방자치단체’로 불리던 곳들도 기업의 실적 악화에 큰 폭의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삼성전자 사업장이 있는 경기 화성시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49.5%에 달해 지방교부세를 전혀 받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지난해 기준 5594억 원에 달했던 법인지방소득세가 있다. 화성시의 지방세수 중 법인지방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4.6%였는데 이 금액이 내년에 절반인 2600억 원으로 줄어들면 지자체가 추진하던 각종 사업들도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통상 지방소득세는 개인과 법인이 소득에 따라 내야 하는 세금인데 개인의 경우 주소지에 소득세 과세표준의 0.6~4.0%를 내고 법인은 각 사업장 소재지 관할 자치단체에 안배, 법인세 과세표준의 1.0~2.5%가 매겨진다.
특히 이천시나 광양시처럼 특정 대기업이 지방재정의 대부분을 맡던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타격이 더 크다. 지난해 기준 이천시의 지방세수 가운데 지방소득세 비중은 67%이고 광양시는 55.1%였는데 이는 SK하이닉스와 포스코의 지분이 컸다. 법인지방소득세 비중이 각각 48.6%, 42.2%나 됐기 때문이다. 개인이 내는 지방소득세와 달리 법인지방소득세는 법인이 각 사업장 소재지에 종업원 수와 건축물 연면적을 1대1로 안분해 지자체에 납부한다. SK하이닉스의 사업장 대부분이 이천에 있는 만큼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이천의 재정에 곧바로 투입되는 구조다.
그런데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2021년 12조 4103억 원에서 지난해 7조 66억 원으로 줄어들고 급기야 올해에는 8조 6223억 원 적자(증권가 컨센서스)로 돌아섰다. 실적에 따라 한 해 뒤에 내는 법인지방소득세도 덩달아 줄며 이른바 부자 지자체에서도 재정 한파가 찾아오는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하이닉스처럼 큰 법인이 있어 따뜻한 재정 운용이 가능했던 지자체일수록 체감되는 세수 부족이 더 클 것”이라며 “재정안정화기금을 가지고 있던 지자체라면 상황이 나은데 그렇지 않은 곳은 올해 세수 펑크와 내년 법인지방소득세 감소로 2년 동안 어려움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43개 기초지자체 가운데 재정안정화기금이 없는 지자체는 19곳(8월 기준)이다. 재정안정화기금은 지자체가 여유 재원이나 예치금을 모아놓는 일종의 비상금으로 조례에 따라 비상시에 안정화기금의 50~70%를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의 안정화기금은 지자체 안에서만 쓸 수 있다. 결국 안정화기금이 없는 지자체는 지방채 발행을 검토하거나 기존 사업에 제동을 걸 수밖에 없다. 행안부는 일선 지자체에 한시적으로 지방채 발행 한도를 증액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법인세를 기초지자체 세원으로 활용하도록 만드는 현행 지방세 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기업의 실적이 기초지자체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만큼 안정적 세수 관리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세는 지방 공공재를 공급해야 하는 만큼 안정적인 세수가 필수”라며 “법인이 잘나갈 때는 타 지자체의 부러움을 사다가 실적이 좋지 않아 세수가 줄어들면 지방채 발행도 쉽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대처 방법이 아예 사라지게 된다”고 밝혔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불필요한 행정절차 등을 줄여줘서 기업 활동에 활력이 돌도록 지자체가 나설 필요도 있다”며 "감세, 규제 혁파 등을 통해 기업을 도와주면 투자가 늘고 일자리도 늘어나 지자체 세원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