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푹신한 매트가 깔려 있는 넓은 공간 한 켠에 쿠션과 담요를 하나씩 집어들고 자리를 잡는다. 공연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 무용수는 나올 기미가 없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던 관객들이 하나둘 눕기 시작한다. 30여 분이 지나고 나서야 무용수가 한 명씩 나오더니 두 시간이 지났을 땐 공연장에 불이 꺼진다.
서울문화재단은 지난달 30일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황수현 안무가의 신작 ‘Zzz’ 현대무용 공연을 프레스콜로 공개했다. 황 안무가는 ‘검정감각’, ‘카베에’ 등의 작품으로 낯선 신체 경험과 새로운 감각을 탐구해 왔다.
일반적인 무용 공연에 익숙한 관객에게 이 공연은 새로운 경험을 준다. 공연이 일반 무용 공연의 틀을 깨기 때문이다. 관객이 공연장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다르다. 무대와 객석이 분리되지 않은 채 매트가 깔린 바닥 전체가 무대이자 객석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이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공연 내 걷거나 앉거나 눕는 등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전에 관객은 바닥에 누울 수 있는 편안한 옷을 입고 오도록 안내 받는다.
공연은 전체적으로 관객을 잠자는 행위로 인도하기 위해 구성됐다. 공연장부터 검은색 배경에 은은한 조명으로 꾸며졌다. 배경 음악으로 파도소리와 유사한 소리들이 나온다. 무용수가 하나둘 등장하는 건 공연이 시작되고 30여 분이 지난 뒤다. 위아래 검은 옷을 입은 무용수들은 음악에 따라 느리게 관객 주변을 걷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음악에 따라 휘파람도 분다. 무용수 7명이 모두 나와 모이는 듯하다가 흩어지며 누워있는 관객들 사이를 조용히 걷는다. 무용수의 동작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공연장의 불이 꺼지고 어두워지자 잠자는 관객의 숨소리가 들린다.
공연은 무용공연으로 표현한 ASMR의 느낌을 준다. 황 안무가는 이번 공연에 대해 관객이 극장 안에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잠을 자는 행위’를 해보며 공동의 감각을 구성하는 퍼포먼스에 동참하게 하는 실험이라고 설명한다. 극장에서 잠자며 몸의 경직성을 풀고 타인의 몸을 만나는 경험은 홀로 잠든 시간 속 신체와 기억을 재구성하고 경험을 저장하며 세상과 연결하는 행위를 사회적 행위로 확장시킨다는 의미다. 공연은 11월 12일까지 쿼드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