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






베를린 장벽 붕괴 1년 후인 1990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이 체결됐다. 냉전의 양대 축이었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30개국이 참여한 이 조약은 전차·야포·장갑차·전투기 등 재래식 무기의 보유 상한을 설정하고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쳐 이를 초과하는 무기를 폐기하도록 했다. CFE는 수차례 개정을 거치며 유럽 지역의 군비 경쟁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면서 탈냉전기 동서 블록 대결 완화와 상호 신뢰 구축에 기여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몰도바 및 조지아 주둔 문제, 나토의 확장 등을 놓고 긴장이 고조되던 2007년 러시아가 이행 정지를 선언하면서 사실상 사문화됐다. 이후 서류상으로나마 존속하던 CFE는 우크라이나 전쟁 1년 9개월째인 이달 7일 러시아의 탈퇴 선언과 나토의 효력 중단 선언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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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후반부에 체결된 CFE가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는 와중에 폐기된 셈이다. 이는 전 세계가 냉전 때와 유사한 무한 군비 경쟁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러시아는 CFE 탈퇴 선언 5일 전인 이달 2일 모든 핵실험을 금지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의 비준을 철회했다. 러시아는 올 2월에도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앞서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9년 사거리 550~5500㎞의 핵미사일 배치를 금지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 참여 중단을 선언하자 러시아와 중국이 크게 반발했다. 중국이 빠진 군축 합의는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이 미국의 인식이다.

CFE의 폐기는 국제사회의 갈등 속에서 군축 협상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앞으로 글로벌 군비 경쟁이 심화되면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도 이를 빌미로 군비 확장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평화는 힘을 바탕으로 할 때만 지속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압도적 군사력 확보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김능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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