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기시다, 감세 역풍·지지율 추락에 연내 해산 단념[뒷북글로벌]

방위비 증액용 대규모 증세 추진하다

선거 전 소득감세 카드에 국민 불신↑

"성장 환원" "국채 찍어야" 정권 엇박

인사 실패·보수 지지층 이탈 등 악재

연내 중의원 해산, 내년 당총재選 등

장기정권 시나리오 대폭 수정 불가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 민생 정책을 둘러싼 국민들의 낮은 호응과 정권 내 엇박자 등으로 역대 최저 지지율을 이어가면서 ‘재집권 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여당 총재가 총리를 맡는 구조로, 기시다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지지율 반등을 위해 꺼내든 개각과 소득 감세 카드가 오히려 추가 하락을 부추기면서 총재 연임과 장기 정권 토대 구축을 염두에 둔 연내 중의원 해산도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내각도 당도 역대 최저 지지율
정권 와해 위험선 아래 결과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EPA연합뉴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EPA연합뉴스




9일 일본 7개 주요 언론사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25~36%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 중 네 곳이 30% 미만이다. 자민당 지지율 역시 최저 21%를 찍었다. 특히 ‘내각·여당 합산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지면 정권이 깨진다’는 경험칙 적용 시 이미 데드라인을 넘긴 결과가 2건이나 돼 정권 내 긴장감은 한층 고조됐다. 오부치 게이조 총리 시절 관방장관을 지낸 아오키 미키오(1934~2023) 전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은 ‘내각과 집권당의 합산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지면 결국 정권이 와해된다’고 주창했는데, 이것이 아오키의 법칙이며 실제로 모리·아소·하토야마 내각 때 이 법칙이 들어맞았다.

민생정책 설득·공감 실패
선거용 소득 감세 부메랑


지지율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는 민생 정책의 잇따른 실책과 신뢰 상실이 꼽힌다. 외무상 출신인 기시다 총리는 취임 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개최부터 한국과의 관계개선, 한·미·일 공조 강화 등 외교 성과를 강조하는 데 주력했다. 글로벌 기업의 일본 거점 유치를 적극 지원하며 산업 측면에서도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과의 온기는 정작 일반 국민에게 스며들지 못했다. 저임금·고물가 상황과는 동떨어진 일련의 경제정책으로 가계(개인)의 부담과 불만이 커진 탓이다.



일본 정부는 당초 43조 엔의 방위비 충당을 위해 2024년 1조 엔을 증세(법인·소득·담뱃세)할 계획이었다. 가계 살림이 어려운 상황에서 세금을 올리겠다는 총리를 향해 ‘증세 안경’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기시다 총리는 그러나 10월 중·참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돌연 ‘감세 카드’를 꺼냈다. “성장(세수 증가분)을 국민에게 환원한다”는 게 이유였지만 급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여론은 물론 당내에서도 ‘선거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내년 증세를 앞두고 연말 구체적인 시점을 논의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겠다는 거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감세가 우선 순위에 오르면서 증세는 내년에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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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2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세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2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세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충분한 설명과 공감이 부족한 정책 전환은 역풍을 맞았다. 중참 의원 2곳의 보궐선거에서 한곳에서만 승리하며 결과적으로 의석수 1개가 준 것이다. 자민당은 참의원 토쿠시마·고지현 선거구에서 무소속에 패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선거전 중반 무렵 기시다 총리는 고치현에 방문해 “고물가로 어려움을 겪는 여러분을 잘 지원하겠다”고 정권의 경제대책을 강조했지만, 청중으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신문은 “고물가가 비인기에 불을 붙였다”며 “총리가 선거구에 방문하고 나서 표가 줄었다”는 자민당 관계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총리 “감세는 성장의 환원”
재무상 “국채 새로 발행해야”


정책을 둘러싼 정권 내 엇박자는 지지율 하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안은 내년 한시적으로 소득세(3만 엔)와 주민세(1만 엔)를 합해 1인당 4만 엔을 공제하고, 주민세를 못 내는 저소득 가구에는 7만 엔을 준다는 게 골자다. 기시다 총리가 감세의 근거로 든 것이 ‘세수 증가’이지만, 나라 곳간을 담당하는 재무성은 다른 말을 한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은 전날 국회에 출석해 “과거 2년간 증가한 세수분은 이미 정책 경비나 국채 상환 등에 충당해왔다”며 “감세를 하려면 국채를 새로 발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금을 깎아주는 만큼 빚을 내(국채 발행) 메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오는 20일 국회에 제출될 예정인 2023년도 추경 예산안을 위해 일본 정부는 8조8 000억엔 규모의 국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단, 여기엔 내년 6월 시작하는 감세 경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 추가 국채 발행 가능성은 더 남아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 ‘재정적자나 저출산 같은 장기 문제도 있는데, 왜 한시적인 퍼주기로 내 아이들에게 외상값을 치르게 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마자와 마나부 간토가쿠인대 재정학 교수는 “만성 재정적자를 안은 채 느닷없이 감세하면 시장의 신인도를 얻지 못하고 인플레이션 가속을 초래할 뿐”이라며 “재정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사 논란·보수 지지층 이탈
상황 악화에 연내 해산 단념


기시다 정권은 이 외에도 디지털 신분증인 ‘마이넘버카드’를 성급하게 추진하다가 행정 오류를 초래하는가 하면 개각 한 달 만에 정무관과 부대신이 각각 불륜, 선거 개입 의혹으로 자진 사퇴해 인사 검증 논란에 휩싸이는 등 악재가 거듭되고 있다. 잇따른 실책에 집토끼 이탈도 늘었다. 2차 아베 신조 정권 시절, 당 지지층의 내각 지지율은 평균 88%였으나 기시다 정권에서는 이 수치가 77%로 낮아졌다. 지지 세력인 보수층이 그만큼 떠났다는 의미여서 내각에는 뼈아픈 결과다.

기시다 총리의 연임 시나리오는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당장 총재 선거를 위한 진용 구축의 성격으로 연내 단행하려던 ‘중의원 해산’이 내년으로 연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기자단에게 “우선은 경제 대책, 미룰 수 없는 과제에 임해가겠다. 그 외의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이 같은 의사를 전했다. 국민의 관심이 고물가에 집중돼 있어 의회 해산이 역풍이 될 수 있는 데다 현재 지지율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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