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이 10일 임기 만료로 퇴임하면서 헌정 사상 최초로 양대 사법수장 공백이 현실화 됐다. 47일째 수장이 공석인 대법원에 이어 헌재 역시 후임으로 지명된 이종석 후보자의 임명까지는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일각에선 국회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안 표결까지 적어도 한 달 가량 헌재소장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 헌재소장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헌재에서 퇴임식을 열고 “1986년 판사로 임명돼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래 37년 이상 재판관으로 봉직하다가 정들었던 헌재를 떠나게 되니 감개무량하다”는 인사를 끝으로 헌재소장 임기 6년을 마무리했다. 유 헌재소장의 퇴임으로 수장 공백을 맞은 헌재는 11일부터 선임 재판관인 이은애 헌법재판관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됐다.
헌재소장이 공석이기는 2017년 김이수 권한대행 체제 이후 6년 만이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7명만 출석하면 사건을 심리할 수 있지만 수장이 공백인 상황에서 재판관 6명 이상 찬성으로 결정되는 위헌, 탄핵 여부 등 주요 사건에 대한 판단은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헌법재판관인 이 후보자 역시 인사청문회 준비로 당분간 업무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커 실질적으로 사건을 심리할 수 있는 인원은 7명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유 헌재소장의 후임으로 이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국회 임명 절차가 지연되면서 오는 13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이 후보자에 대한 '송곳 검증'을 예고하고 있어 국회 인준을 통과할 수 있을 지 예단하기 어렵다. 헌재소장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인 반대하면 임명이 불가능하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이 동시에 공석인 경우는 헌정 사상 처음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후임으로 지명된 이균용 전 후보자는 야당이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낙마했다. 새 후보자로 지난 8일 조희대 전 대법관이 지명됐지만 아직 인사청문회 일정도 잡히지 않은 상태다. 조 후보자 임명이 지연될 경우 대법원은 대법관 공석까지 더해져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된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안철상 대법관과 민유숙 대법관은 내년 1월 1일 퇴임을 앞두고 있다.
다만, 조 후보자는 28년간 법관으로 재직한 뒤 로펌행 대신 대학을 선택해 전관예우 논란에서 자유롭다. 여야는 2014년 조 후보자가 대법관 후보 시절 만장일치로 청문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조기에 임명동의안이 채택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대법원장 장기 공석에 따른 재판 지연으로 결국, 피해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점도 야당 입장에선 부담이다. 대통령실 역시 조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이런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이 동시에 공석인 초유의 상황이 야당에 부담으로 작용해 양대 사법기구 수장 임명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