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충남 서산 현대트랜시스 지곡2공장에 들어서자 크고 작은 은빛 원형 링이 봉에 끼워진 채 협력사로부터 입고되고 있었다. 마치 헬스장 한 켠에 무게별로 정리된 둥근 원판 같았다. 이들은 변속기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인 기어의 원자재다.
변속기는 자동차 엔진에서 만들어지는 동력을 바퀴로 전달하는 장치다. 트랜스미션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속도에 따라 바퀴의 회전수를 변환해 엔진의 부하를 막고 연료 효율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하이브리드 차량은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모터 두 가지 동력원을 함께 사용하는 만큼 변속기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엔진과 모터의 성능이 아무리 좋다 해도 변속기가 효율적으로 동력원을 조율하지 못하면 연비는 물론이고 주행 질감, 성능까지 떨어트릴 수 있어서다. 전동화 모델의 힘과 효율성을 좌우하는 심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면이 매끈하던 기어는 중형 버스 크기 만한 공작기계를 거치며 일정한 간격의 톱니 모양으로 탈바꿈했다. 사람의 치아처럼 균일한 모양의 홈을 새긴 부품들은 1000도에 육박하는 열을 가해 내구성을 높인 뒤 홈을 깎아내는 공정을 다시 한 번 거쳤다.
변속기는 다른 크기의 기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형태다. 다양한 기어를 조립하는 최종 공정은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람의 손길을 거친다. 공장 내부에 투명한 유리와 벽으로 완벽히 분리된 별도 공간에서 이 작업이 진행된다.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과 유사한 모습이다. 티끌 만한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녹이 슬면 변속 중에 울컥거림이 느껴지는 불량이 발생할 수 있어서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작업 공간이 필수다. 김진명 지곡공장 생산2팀 매니저는 “최적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클린룸 내부는 항상 24도를 유지한다”며 “인도 등 습한 지역으로 수출되는 물량도 많기 때문에 녹을 방지하는 방청 작업도 필수적”이라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현대차(005380) 투싼, 기아 쏘렌토·K8 등의 하이브리드 모델에 탑재되는 변속기가 연간 최대 54만 대 만들어진다. 30초당 1개씩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심장이 탄생하는 셈이다.
지곡공장은 2공장을 포함해 총 5개의 공장을 갖추고 있다. 총면적만 해도 축구장 102개, 여의도의 4분의 1 크기다. 지곡공장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성연공장도 자리한다. 두 곳을 포함한 현대트랜시스 서산공장에서는 하이브리드 변속기를 연간 90만 대씩 만들어낸다. 올해는 밀려드는 주문 탓에 생산 목표를 높여 잡았다. 김기홍 P/T생산전략팀장은 “높은 수요가 이어지고 있어 특근을 통해 연말까지 최대 100만 대의 하이브리드 변속기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성연공장에서는 전기차용 감속기도 연간 90만 대씩 생산한다. 감속기는 전기차의 변속기에 해당하는 부품으로 아이오닉 5, EV6 등 현대차그룹의 모든 전기차에 탑재된다. 내연기관의 자동·수동변속기와 듀얼클러치·무단변속기부터 하이브리드 변속기, 전기차 감속기까지 자동차 구동 시스템과 관련한 모든 제품군을 생산하는 기업은 세계에서 현대트랜시스가 유일하다.
2019년 현대다이모스와 현대파워텍이 통합해 출범한 현대트랜시스는 올해로 5주년을 맞았다. 전동화 시대에 중요성이 높아진 파워트레인과 시트를 생산하며 현대차그룹 내부에서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다. 현대트랜시스의 파워트레인 연간 생산능력은 국내 450만 대, 해외 350만 대로 총 800만 대에 이른다.
홍상원 P/T생산본부장 전무는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변속기 6700만 대를 생산했고 서산에서만 4000만 대를 생산했다”며 “전기차 확산에 맞춰 감속기 생산을 늘려나갈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