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SVB사태 조기 진화' 英 벤치마킹…부실 은행 정리절차 간소화

■예보, 금융기관 특별정리制 추진

英, 3일 만에 SVB 자회사 매각

금융권 전체로 리스크 확산 막아

당국이 행정권 발동해 적기 매각

금융기관 문제때 조기 해결 가능

당국 협의 거쳐 내년 법개정 추진

부실 제2금융권 정리에 활용할 듯





예금보험공사의 ‘특별정리제도’ 도입 논의는 올해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급물살을 탔다. SVB 파산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스위스 2위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가 1위 UBS에 팔리는 등 전 세계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위기에 몰리자 국내에서도 추가 대응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저축은행 등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취약한 업권에서 예상하지 못한 부실이 발생할 경우 금융권 전반으로 리스크가 확산되는 일을 조기에 막을 장치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예보는 금융위원회, 민간 전문가 등과 함께 특별정리제도 도입을 위한 민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응책을 논의해왔다.

14일 예보 등에 따르면 내년 도입이 추진되는 특별정리제도는 현재 부실정리제도에 비해 정리절차가 대폭 간소화된다. 현행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당국은 은행에 자구 계획을 마련할 것을 먼저 요구한 후 이를 이행한 뒤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직접 나서도록 돼 있다. 문제는 은행이 계획안을 마련할 때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 등과 협의를 거쳐야 하다 보니 논의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매각이나 이전의 적기를 놓칠 가능성도 크다.



반면 특별정리제도는 당국이 행정권을 발동해 곧바로 정리절차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사태를 조기 수습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일종의 ‘패스트트랙’으로 볼 수 있다. 특별정리제도 도입 논의에 참여 중인 한 인사는 “특정 은행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현행법에 규정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서 “지금대로라면 문제가 생기고 빨라야 3~4개월 뒤에나 매각 등 실질적인 정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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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는 앞서 특별정리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이 금융위기를 적기에 진화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SVB 사태를 빠르게 수습한 영국이 대표적이다. 앞서 미국 SVB가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 여파로 올 3월 10일 파산한 후 영국중앙은행(BOE)은 SVB의 자회사인 SVB UK에서도 뱅크런 수요가 발생하자 같은 날 파산절차를 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부터 불과 사흘 뒤인 3월 13일 BOE는 SVB UK의 모든 지분과 자산을 HSBC에 넘기기로 결정했다.

당시 SVB UK의 유형자산은 14억 파운드(약 2조 3000억 원)로 추정됐는데 매각 대금은 단돈 1파운드(약 1600원)였다. 당국의 과감한 정리 방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가 없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일이었다는 시각이 많다. SVB UK 정리 사례를 두고 글로벌 투자은행(IB) JP모건은 “금융시장이 열리지 않는 주말 동안 인수 작업을 진행해 시장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연쇄 예금 인출 사태 등 영국 금융 시스템 내 불안 전염을 효과적으로 방지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도 “인수가 매우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BOE가 특별정리제도하에서 피인수 기업의 이사회·주주, 그리고 채권자의 동의 없이도 정리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봤다.

금융권에서는 특별정리제도가 도입되면 저축은행 등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취약한 금융기관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조기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국내 저축은행의 재무 부담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연체율 추이를 보면 올해 6월 말 5.33%로 지난해 말(3.41%)에 비해 불과 반년 사이 2%포인트 가까이 뛰는 등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시중은행이 최근 예적금 금리를 일제히 올린 터라 저축은행들은 뭉칫돈이 빠져나가는 일을 막으려면 재무 부담에도 금리를 따라 올려야 할 판이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 업권에서 예상하지 못한 부실이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안전장치를 추가로 마련해둔다면 만에 하나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업권 전반으로 피해가 전이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예보는 금융 당국과의 협의를 거쳐 내년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예보는 “민관 합동 TF 논의 등을 통해 신속 정리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법제화에 앞서 업권 의견을 들을 것”이라면서 “유럽연합(EU)과 영국 등 특별 정리를 도입한 주요국 제도를 벤치마킹하고 필요시 해외 당국과의 협의를 통해 보완 사항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SVB 사태 이후 예보, 민간 전문가와 함께 특별정리제도를 분석하고 있다”면서 “법률 개정 시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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