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문화적 맥락도 다르지만 인간의 폭력이라든지 제노사이드(대량 학살) 등은 우리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에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소설만으로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상을 수상하고 최근 귀국한 작가 한강은 14일 기자 간담회에서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4·3의 비극을 이해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한국 역사와 한국인의 감성이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감정의 공유를 통해서 외국인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 있다는 있다는 의미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 작가가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뒤 5년 만인 2021년 펴낸 장편소설로 제주 4·3의 비극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프랑스 메디치상 외국문학 부분은 1990년 인도인 작가에 이어 아시아인으로서는 두 번째 수상이다.
소설은 소설가이기도 한 주인공 경하가 목공 일을 하다가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집에 가서 어머니 정심의 기억에 의존한 아픈 과거사를 되짚어간다는 내용이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마련한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한 작가는 소설의 사실상 주인공인 ‘정심’에 대해 “슬프고 무력하고 조그마한 인물인 줄 알았는데 끝까지 애도를 멈추지 않고 작별하지 않고 싸운 사람이었다”면서 “그런 마음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소설을 쓰면서 정심의 마음이 되려고 많이 노력했다. 아침에도 정심의 마음으로 눈뜨려 하고 잠들 때까지 ‘정심은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되뇌며 그 뜨거움과 끈질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는 최경란, 피에르 비지우의 번역으로 올해 8월 말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한 작가는 “우리말 제목인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별하지 않는다’거나 ‘작별을 알리지 않는다’라는 차이라든지, ‘나’나 ‘우리’의 주어 문제 등이 애매할 수 있는데 이를 프랑스어에서 명사로서 잘 처리했다고 본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그동안 소설을 써오면서 최고의 순간이 언제였는지 묻는 질문에는 “제일 기뻤던 순간이 2021년 4월 말 이 ‘작별하지 않는다’를 완성한 순간”이라며 “워낙 오래 걸리고 힘들게 썼다”고 회고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이번 4·3의 비극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상처를 소설로 형상화해온 작가는 앞으로는 ‘밝은 얘기’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소설은) 이렇게 두 권을 작업했는데 이제는 더는 안 하고 싶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눈이 계속 내리고 너무 춥고, 이제 저는 봄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차기작에 대해서 작가는 “생명에 관한 소설”이라고 했다. “생명에 대한 생각을 요새 많이 해요. 원하든 원치 않든 받아 든 선물인 이 일회적 생명을 언젠가는 반납해야 하잖아요.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진척시켜서 봄으로 가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