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좌초됐던 간호법 제정이 재추진되면서 보건의료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기존에 국회를 통과했던 간호법 제정안의 일부 내용을 손질해 재발의한다고 예고했지만, 여전히 간호사를 제외한 나머지 보건의료계 직역들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순탄치 않은 여정이 예상된다.
22일 정치권과 보건의료계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고영인 의원실은 간호법을 대표 발의한다고 예고했다.
간호법은 현행 의룝버에 포함된 간호사 관련 규정을 따로 떼어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권리 등이 담긴 단독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간협의 오랜 숙원으로 올해 5월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의사, 간호조무사 등 다른 보건의료직역단체의 반발과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이번에 발의되는 법안은 기존에 국회를 통과했던 간호법에서 논란이 됐던 ‘지역사회’의 개념을 장기요양기관 등으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기존 법안과 차이가 난다. 고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민주당 복지위원들이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 지도부나 원내지도부는 공동발의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간호협회도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아 간호법 재추진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 22일 신동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 여야 국회의원 14인과 공동 주최 형태로 대한간호협회 100주년 기념 국제세미나를 열었고, 2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전국 6000여 명의 간호사들이 모이는 100주년 기념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날 간호법 추진 경과보고와 각국 간호리더들이 간호법 제정을 지지하는 간호법 제정 추진 다짐대회도 함께 열린다. 간호법 국제세미나와 한일학술세미나, 방문간호 국제심포지엄도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김영경 간협 회장은 10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여야 합의하에 간호법을 조정하고 추진할 예정”이라고 언급하며 간호법 재추진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세미나에 참석한 여당의원들이 간호계 숙원 성취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신동근 위원장은 “민주당에서는 고영인 의원을 중심으로 관련 직역의 합의하에 (간호법을) 추진했으나 마지막 순간 의료기사단체가 동의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한 바 있다"며 "이번에 간호사들과 함께 다시 간호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개회사를 통해 “간호사를 위한 법과 제도적 기반이 반드시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의사, 간호조무사, 응급구조사 등 간호사를 제외한 나머지 보건의료직역들이 여전히 간호법 제정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 21일 간호사에게 응급구조사 업무를 허용하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119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자 대한의사협회를 필두로 14개 보건의료단체는 크게 반발했다.
119법 개정안은 119구급대원의 응급처치 범위를 확대하자는 게 골자다. 다만 ‘소방청장은 구급대원의 자격별 응급처치를 위한 교육·평가와 품질관리 등을 계획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신설 조항이 문제가 됐다. 현행법상 간호사 출신 구급대원은 의료법에 규정한 간호사의 업무범위 안에서만 구급활동을 할 수 있는데, 새 규정에 의하면 그 범위가 응급구조사 기준까지 넓어지게 된다. 응급구조사 구급대원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인공호흡기를 이용한 호흡 유지와 산소 투여 등 총 14종에 한해 응급처치가 가능하다.
이들 단체는 119법 개정안이 또 다른 간호법이라고 규정하고 “개정안대로라면 간호사에게 응급구조사의 업무를 전부 허용하겠다는 것과 진배없다”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14보건복지의료연대에는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보건의료정보관리사협회, 대한임상병리사협회, 대한작업치료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가 소속돼 있다. 이들은 앞서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 직전까지 연대 형태로 강력하게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간호법을 단독 제정하는 데 대해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확대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보니 반대 여론을 뛰어넘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