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단순하게 공포를 조장하는 작품은 많아도, 그 문제에 대해 관객들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영화는 찾기 어렵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후자의 경우다. 사람의 편견이 얼마나 큰 불행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지에 대한 날카로운 고찰이 담겨 있다. ‘어느 가족’, ‘브로커’, ‘태풍이 지나가면’ 등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일본 영화계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괴물’의 이야기다.
◇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신선한 연출과 긴박한 서사 눈길 = '괴물'의 사전적인 의미는 '괴상한 사람 혹은 물체'다. 어딘가 수상하고, 나쁜 일을 저지르고, 사회에 악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병든 사회는 타인을 믿기보다는 '괴물'로 재단해버리는 편이 쉬운, 흉흉한 환경에 놓여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은 교권 추락, 학교 폭력, 아동 학대 등의 소재를 통해 병든 사회와 못난 마음들이 만들어낸 '괴물'을 추적한다.
평온한 동네에 사는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어느 날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이상한 행동을 발견하게 되고 점차 자신의 아들이 학교폭력의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의심을 품는다. 결국 학교를 찾아간 사오리, 하지만 반대로 미나토가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괴롭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진실을 알아보기 위해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사오리는 요리가 피해자라고 주장한 호리 선생(에이타)을 만나게 되고 그의 이상한 태도로 인해 사오리는 호리 선생을 질책하기 시작한다.
'괴물'은 특정한 시간대에 속했던 각 인물들의 시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사건의 진실을 조명한다.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호리 선생을 '괴물'로 의심한 사오리다. 사오리는 호리 선생을 폭력 선생으로 몰아 퇴직에 이르게 만든다. 하지만 이후 영화의 앵글은 호리 선생의 시점으로 바뀌고 그만이 본 두 소년의 관계를 드러내며 반전을 선사한다.
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혔다고 확신하는 호리 선생은 미나토를 학교 폭력 가해자인 ‘괴물’로 몰아간다. 요리의 이상한 행동을 모두 미나토의 탓으로 치부하며 요리에게 진실을 호소한다. 하지만 호리 선생에 이어 요리, 미나토, 교장 선생님 등 모든 등장인물들의 시점들이 연이어 밝혀지는 과정은 미친듯한 속도로 흘러가고 그 끝에서 포착된 진실의 형태는 관객들을 충격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다.
◇괴물의 정체 ‘일본판 포스터’에 힌트 있다? = '괴물'의 일본판 포스터에는 작품 초반부, 갑자기 사라졌던 미나토가 터널 속에서 발견됐을 때 허공을 향해 섬뜩하게 외치는 '괴물은 누굴까?(怪物はだれだ?)'라는 대사가 적혀있다. 이 문장은 ‘괴물’을 통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전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메시지와 관련이 있다.
사실 '괴물은 누굴까?'는 그저 미나토와 요리 사이만 알 수 있는 하나의 사인이자 게임이다. 하지만 사실을 알기 전에는 마치 미나토가 요리를 괴롭히려 하는 수단처럼 보이기도, 혹은 그들만의 끔찍한 장난과 연관된 장치처럼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점차 미나토와 요리의 진실이 밝혀지며 '괴물'은 단지 사람들의 마음이 만들어낸 편견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 소년들을, 관객을 위로하는 故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 가족이라는 키워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가족'(2018), '브로커'(2022) 등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연속적으로 선보여왔다. 이번 작품 또한 가족을 소재로 너무 가깝기에 말하지 못하는 비밀, 숨겨야 하는 감정 등 가족 사이에 발생하는 세세한 충돌과 갈등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가슴 아리게 풀어내며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완벽한 연출을 선보였다.
더불어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을 만큼 사카모토 유지가 구성한 서사는 완벽에 가깝다. 등장인물들 각자의 시점을 면밀히 담아냈으며 그들이 선인도, 악인도 아닌 경계 사이에서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장치들을 탄탄하게 넣었다. 특히 "몇몇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 하지 않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을 행복이라고 하지"와 같은 대사는 그들이 악인이 아닌, 그저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인물들의 서사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사카모토 유지 표 대사들은 웅크린 마음을 녹아내리게 할 정도로 따뜻하고 값지다.
암 투병 끝에 지난해 3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故 사카모토 류이치의 영화 음악도 ‘괴물’에서 놓쳐선 안될 포인트다. 당시 암 투병 중이었기에 전체 OST는 아니지만, ‘몬스터(Monster)1·2’ 이 두 곡은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한 곡이라고. 특히 영화의 핵심, 엔딩 신에 흘러나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따뜻한 멜로디는 영화와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에서 두 소년의 이야기는 열린 결말로 끝났지만 따스한 음악 덕분에 그 끝이 새드 엔딩이 아닌, 해피 엔딩일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세상 어디선가 편견으로 인해 홀로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을 '괴물'들에게 언젠가는 빛에 당도할 것이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응원 같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