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행복론과 인생론’에서 “인생의 끝 무렵은 가면을 벗는 가장무도회의 끝 무렵과 같다. 자신이 살아 온 모든 경험, 지식, 훈련, 숙고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자신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은 무엇으로 자신의 마음을 채우느냐에 달려 있으며 예술이야말로 인간을 고통과 욕망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신성한 탈출구라고 말한다.
다가오는 12월, 국내 대표 원로 배우인 신구·박근형·박정자가 출연하는 사뮈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가 국립극장에서 개막한다. 주요 출연자 5명 중 3명이 80대 이상의 원로 배우이고 두 달간 단일 캐스트로 무대를 이어간다. 이들의 노익장은 화제가 아닐 수 없다.
행복한 노년의 삶은 어떠한 모습인가. 올해 한국의 평균 수명은 85.14세로 노령 인구는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삶의 질’에 대한 욕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웰에이징을 넘어 ‘문화예술을 통한 창의적 나이듦’, 즉 크리에이티브 에이징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미국 국립예술기금과 진 코헨 조지워싱턴대 박사의 2006년 연구에서 출발한 ‘창의성과 노화 연구’에서는 전문적으로 수행된 예술 학습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노인들에게서 질병 예방과 수명이 연장이 확인됐다. 미국의 화가 조지아 오키프는 평생 비행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더 이상 비행이 두렵지 않고 공포감으로부터 저절로 치유됐음을 느꼈다.
미국의 은퇴자협회(AARP)에서는 은퇴 노인들의 거주 적합도에서 박물관 등 문화 시설을 최우선으로 꼽고 있다. 일찍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일본은 지역의 생애 학습 기관인 공민관을 중심으로 아마추어 시니어 클럽, 창의 활동 등 다양한 시니어 문화 정책과 고령 친화 도시를 구축해왔다.
우리나라도 어르신들이 창작 주체로서 참여하는 문화 예술 교육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을 도입한 ‘스마트 경로당’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어르신들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에 미술·무용 등 예술 분야를 결합한 치매 예방 프로그램과 게임을 즐기며 활력을 되찾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이 같은 활동만으로도 어르신들은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며 공동체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사회와 연결되는 기회를 얻는다. 이렇게 문화 예술은 다양해진 우리 노년의 삶을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문화 예술 교육에서도 아동·청소년뿐만 아니라 중장년에서 노년층으로 확장하는 ‘시니어 시프트’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