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인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서 차를 타고 30여 ㎞를 달리면 나오는 방콕의 카오산로드. 21일 오후 10시께 직접 걸어본 이곳은 초입부터 고약한 대마 냄새로 가득했다. 1㎞에 불과한 거리였지만 대마 카페와 길거리 대마 가게 20~30여 개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0m폭의 길 양편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이 대마에 취해 늘어져 있었으며 ‘해피벌룬’을 불어대며 소리를 지르는 동양인도 눈에 띄었다. 한때 배낭여행객의 성지로 불렸던 카오산로드가 격변하고 있었다. 그때 난데없이 누군가가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는 “좋은 대마가 많으니 구경해보라”고 속삭였다. 태국인 길거리 대마상이었다.
현지 관계자와 함께 일반인으로 가장한 기자가 그에게 “대마 외에 다른 마약은 없느냐”고 질문했다. 자신의 노상판매대로 이끈 그는 테이블 아래에서 거뭇거뭇한 버섯을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말린 ‘환각버섯(Magic Mushroom)’이었다. 환각버섯은 대한민국과 태국 모두 불법으로 강력한 환각 작용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보다 중독성이 강한 마약인 필로폰과 케타민 등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원하는 양과 종류를 미리 말하면 자신의 지인을 통해 판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파타야 지역도 다르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현재 합법이 된 대마만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다른 마약은 없냐”는 질문에 어김없이 환각버섯을 꺼내들었고 필로폰 등 보다 강력한 마약의 구매 가능성도 암시했다. 방콕에서 2달째 거주 중인 한국인 A 씨는 “태국에서 대마 외에도 마약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파타야 지역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한국인 B 씨는 “수개월 전에는 게스트하우스 화장실에서 백인들과 한국인들이 섞여 케타민 등을 투약했다”며 “이후로 대마를 포함한 모든 마약에 대한 실내 섭취를 제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달 20일부터 22일까지 태국 현지를 방문한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태국 방콕과 파타야 일대는 2018년 사실상 합법화된 대마뿐 아니라 각종 마약을 구할 수 있는 ‘마약 허브’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많은 일반인이 대규모 마약 조직과 엮여 운반책으로 이용되고 있다. 다만 현지 관계자는 조직과 일반 운반책 사이에 정보 불균형이 존재하며 운반책들은 사실상 ‘일회용품’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운반책들이 처벌 수위를 모른 채 수백만 원의 수당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태국에 상주 중인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태국에서 한국인이 검거될 경우 단순 운반책이라고 하더라도 10~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이 관계자는 “얼마 전 텔레그램을 통해 운반책으로 활동한 20대 남성이 태국 공항에서 붙잡혀 20년 형이 선고됐다”며 “태국 교도소의 환경이 한국과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무거운 처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20년의 젊은 시절을 걸고 그가 당시 받은 비용은 500만~700만 원 수준”이라며 “만약 자신이 태국에서 붙잡혀 중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운반책으로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태국마약청에 따르면(ONCB) 태국에서 검거된 한국인 마약사범은 모두 20~40대의 젊은 남성이다. 텔레그램 구인·구직방에서 수백만 원의 큰 보수를 약속하는 조직원에 의해 섭외되거나 한인 네트워크 등을 이용해 운반책으로 모집된다. 또 다른 현지 관계자는 “마약 조직은 총책과의 연결 고리를 줄이기 위해 조직원을 운반책으로 이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수십 배의 차익을 남길 수 있는 만큼 총책 입장에서 운반책이 검거되는 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십수 번 중 한 번만 성공한다 해도 이익이 남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태국 내 마약이 한국으로 밀수되는 경우 마약의 가격은 10~15배가량 오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대부분의 마약 밀수책은 공항에서 검거되거나 첩보에 의해 붙잡힐 수 있다는 것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실제 취재진이 태국에서 출국 심사를 받는 과정은 삼엄한 경비 속에서 이뤄졌다. 출국자의 신발을 벗게 하고 벨트까지 풀게 한 뒤 철저한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과정을 사진 찍으려는 여행객에게는 호통이 떨어지기도 했다. 아울러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도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 국가에서 입국한 한국인들에 대해 임의로 몸과 짐을 수색하고 있다.
한 현지 관계자는 “운반책들은 대부분 자신이 얼마나 큰 처벌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가담한다”며 “이들의 자발적 참여만 막을 수 있어도 한국 내 마약 문제를 일정 수준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태국은 미얀마·라오스와 함께 세계 최대 마약 생산지인 이른바 ‘골든트라이앵글’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는 만큼 한국과의 국제 공조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태국은 미얀마·라오스에 비해 항공·철도·도로 등 뛰어난 교통 인프라로 마약 유통이 대부분 태국을 거치고 있다. 프린 메카난다 태국 마약청 수사국장은 “과거부터 한국과 태국은 긴밀한 협력을 이어온 관계”라며 “마약 범죄 척결을 위해 정보를 교환하고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