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공감하고 그들에게 힘을 주고 지지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다짐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히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신간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약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과정과 방법을 담았다.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과 행복에 대해 연구해 온 저자는 자신이 거쳐 온 과정의 내밀한 기록들을 상세히 소개한다.
책은 소수자에게 낙인을 찍던 19세기부터 국내 성소수자에 관한 논문까지 여러 관점의 담론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 캐런 메싱 등 저명한 학자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사회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차별은 공기처럼 존재한다”고 말하며 “당신이 정상인이라면, 그것은 특권층이라는 뜻”이라고 강조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환자의 인종은 진통제 처방에도 영향을 미친다. 히스패닉 환자 중 진통제를 처방받지 못한 환자의 비율은 백인 환자의 2배에 이르렀다. 이처럼 우리의 암묵적인 편견은 차별을 자연스럽게 실행시킨다.
이는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랜스젠더 5명 중 1명은 신분증을 제시하는 것이 두려워 병원에도 가지 못한다고 답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대중교통과 공중화장실 이용을 어려워한다.
이처럼 우리는 차별의 이면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저자는 차별을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차별이 있다고 말한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연구 당시 연구자도 해고 노동자의 아내가 고통의 당사자임을 간과했다고 한다.
우리 ‘특권층’들은 소수자를 위한 손쉽고 간단한 해결책들을 내놓지만, 그것은 소수자들의 고통을 전혀 해결해주지 못한다. 세월호 사태에서 해결책이라는 ‘고심 끝에 해경 해체’는 얼마나 간단한가. 저자는 이런 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어 저자의 논지는 한국 사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책은 “모든 소수자가 두려움 없이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난민 수용 논란, 장애인 이동권 투쟁 등 다양한 사회적 논쟁이 펼쳐지고 있는 현 시점, 우리는 과연 저들의 고통을 단 한번이라도 진정으로 이해해보려 한 적이 있었을까.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 한 번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2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