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만취 운전 뒤 도주한 경찰관…동료가 “봐달라” 부탁하자 일어난 일

KBS 보도화면 캡처KBS 보도화면 캡처




현직 경찰관이 만취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고를 내고 도주해 강등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 모 경찰서 소속 A순경은 지난해 9월 식당에서 동료 직원들과 2시간가량 회식을 하면서 소주를 20잔 넘게 마셨다. 3병에 가까운 많은 양이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이른바 '소맥'도 2잔을 함께 마셨다. 이후 2차로 장소를 옮긴 그는 자정 무렵까지 맥주 19잔을 더 마셨다.

그럼에도 A순경은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지 않은 채 첫 회식 장소인 식당 주차장으로 돌아가 승용차를 직접 몰았다가 인천시 중구 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았다.

차량 번호판이 도로에 떨어질 정도로 충격이 큰 사고였으나 그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했다.

사고 발생 30분 뒤 순찰하던 다른 경찰관이 파손된 중앙분리대를 발견했고 주변에 떨어진 번호판으로 A순경의 차량을 특정했다.

곧바로 사고 지점 관할 지구대 경찰관들이 A순경의 자택에 찾아가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인천 중부경찰서 교통조사팀은 이후에 연락이 된 그를 당일 새벽 경찰서로 소환했다.

그러나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A순경은 음주 측정을 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A순경이 당시 근무한 부서 팀장이 평소 알고 지낸 중부서 교통조사팀 수사관에게 "한 번 봐 달라"며 음주 측정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침이 되자 경찰서 안에 소문이 퍼졌고 결국 A순경은 사고를 내고 10시간 이상 지나 당일 오후 음주 측정을 했다. 당연히 혈중알코올농도 수치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A순경의 음주운전 의혹을 2개월가량 수사했으나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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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경찰청은 그러나 지난 1월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 위반 등으로 A순경에게 강등 처분을 했다. 그의 범행 당시 계급은 경장이었으나 징계를 받고 순경으로 강등된 것이다.

A순경은 징계에 불복해 인사혁신처 소청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되자 징계가 부당하다며 인천경찰청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사이 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도 받았다.

그는 행정소송에서 "품위는 개인이 갖춰야 할 품성이나 교양이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대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당시 비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게 아니어서 품위유지 의무 위반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찰공무원 징계령에 따르면 혈중알코올농도가 0.08% 미만이면 정직이나 감봉"이라며 "이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더 수위가 높은) 강등 처분을 한 것은 너무 가혹해 위법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법원은 A 순경의 당시 비위 수준을 볼 때 강등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인천지법 행정1-2부(소병진 부장판사)는 A 순경이 인천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강등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당시 원고는 음주운전 등 교통 범죄를 예방하고 수사할 책임이 있는 경찰 공무원이었는데도 비위행위를 저질렀다"며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원고의 당시 비위는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됐고, 상급자도 원고를 상대로 음주 측정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담당 경찰관에게 부탁했다가 직무 유기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며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에 가혹한 징계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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