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통화정책의 최대 화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다. 국내로 한정하면 국내 물가가 먼저 안정됐을 경우 한국은행이 미 연준보다 먼저 금리를 내릴 수 있느냐의 문제로 좁혀진다.
그런데 한 가지를 더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요국의 긴축 행보와 동떨어져 나 홀로 초완화정책을 고수해 온 일본은행(BOJ)의 정책 변화다. 일본은행의 결정에 따라 내년 미국 국채금리 등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이 ‘용(龍)의 해’가 아니라 ‘엔(円)화의 해’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한은 내부에서도 미국 국채금리 움직임을 주시하는 만큼 당분간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28일 이용재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11월 국제금융 인사이트’를 통해 “내년 연준 못지않게 일본은행의 행보가 중요하며 정책 피벗(pivot·전환)의 시그널이 될 수 있는 엔화 움직임에도 경계감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은행은 2016년 수익률곡선관리정책(YCC)을 도입해 단기금리는 마이너스로, 10년물 국채금리는 상하한선을 정해놓고 시장금리가 이보다 높아지면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금리 수준을 낮추고 있다.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기 위해 가계나 기업이 소비·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초완화적 정책을 고수한 것이다.
최근 일본은 경제가 회복되고 물가가 오르는 등 초완화적 정책 등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3%(7월)에서 2.0%(10월)로 0.7%포인트나 상향 조정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올해 2.8%, 내년 2.8%, 2025년 1.7% 등으로 전망했다. ‘소비자물가의 기조적 상승률’이라는 표현도 처음 사용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통화정책 차별화로 엔저가 심화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일본은행도 엔화 약세 등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달러 환율은 이달 13일 151.92엔까지 오르면서 1990년 이후 3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1일 147.1엔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다시 149엔 수준까지 오르는 등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72.18(2020년=100)로 국제결제은행(BIS)가 통계를 제공하는 1994년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시중금리도 상방 압력을 크게 받고 있다. YCC가 국채를 무제한 매입해 장기금리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정책인 만큼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이를 강하게 누르는 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일본은행은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해 7월, 10월까지 정책을 조금씩 수정했고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정책 전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커지는 상황이다.
다만 내년 중 정책 전환이 이뤄질 경우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특히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지난해 일본 전체 예산의 22%가 국채상환, 이자 지급 등에 사용됐는데 금리가 오르면서 재정 부담이 추가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양적완화가 발표된 2013년부터 10년물 국채발행을 늘렸는데 만기가 점차 돌아오는 상황이다. 이를 다시 빚을 내서 갚아야 하는데 그간 장기금리가 상승해 추가적인 이자 부담이 발생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일본 금리가 1~2%포인트만 올라도 경제가 감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 국채 절반을 보유한 일본은행의 국채 평가손 논란도 고려해야 한다.
글로벌 영향도 있다. 저금리 장기화로 늘어난 일본의 해외 증권투자(3조 5000억 달러)가 자국 내 금리 상승으로 일부 돌아오는 데다 저금리와 엔저를 이용한 차입자금으로 해외 투자하는 ‘엔 캐리’ 자금도 상환된다면 미국 국채시장 등 국제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이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용재 원장은 “이 경우 엔화 움직임이 예상보다 급격해질 수 있는데 최근 한 기관은 내년이 ‘용의 해’가 아니라 ‘엔화의 해(Year of the Yen)’가 될 것이라고 할 정도”라고 했다. 미국 장기금리 움직임은 우리나라 금융시장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실제 정책 전환 가능성은 당분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과거 경기가 좋아진다고 판단했으나 다시 악화된 적이 있기 때문에 정책 전환에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성급하게 금리를 올렸다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큰 상황이다. 최근 일본 내에서도 산토리 등 일부 기업이 임금 인상에 나선 가운데 이로 인해 물가가 오르는 ‘임금·물가 순환(wage-price spiral)’이 나타나면 일본은행이 금융완화정책을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우에다 총재는 내년 초 노사 임금 협상이 집중되는 ‘춘투(春鬪)’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정부에서 춘투를 통해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그는 지난달 회의 간담회에서 마이너스금리 해제 시점에 대해 “물가 목표 달성을 내다볼 수 있는 시점이 언제인지에 달려있는데 물가와 임금의 선순환이 2% 수준으로 지속될 필요가 있어 그런 측면에서 내년 춘투가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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