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저출산 현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7~9월 합계출산율은 0.70명으로 3분기 기준 최저치를 경신했습니다. 올 3분기 출생아 수도 전년 동기보다 11.5%나 줄어든 5만 6794명을 나타내며 역대 최저를 보였습니다.
정부가 저출산 대응 과정에서 ‘헛돈’을 써왔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입니다.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따라 중앙 정부가 올해까지 지출한 저출산 대응 예산은 380조 원에 달합니다. 그러나 수백 조 원의 나랏돈을 쓰고도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현상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습니다.
정부도 현행 정책으로는 저출산 흐름을 바꾸기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등에선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재구조화를 추진하며 저출산 대응 정책 개선에 나섰습니다.
이를 위해 저고위는 지난해부터 각종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 중 눈여겨볼 만한 연구가 최근 완료됐습니다. 저고위가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 의뢰한 ‘저출산 정책 평가 및 핵심 과제 선정 연구’입니다. 이 연구의 핵심은 △현금 지원 △육아휴직 △보육지원 등 우리나라의 주요 저출산 정책의 효과를 분석한 것입니다.
출산지원금, 일부 중산층에만 ‘약발’
이번 연구 결과의 골자 중 하나는, 지방자치단체가 소득과 상관없이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이 일부 중산층의 출산율에만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연구진은 2002~2021년 건강보험 데이터를 토대로 전체 건보 직장가입자의 소득 수준을 5분위로 나눴습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이 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이 소득 분위별 합계출산율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했습니다.
이 중 소득 상위 21~40%인 4분위에서만 유의확률(P)값이 0.0001 미만으로 조사됐습니다. P값은 회귀분석의 통계적 유의성을 따질 때 쓰이는 수치입니다. 보통 0.05를 밑돌 때 유의성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반면 고소득층인 소득 5분위(상위 20% 이내)는 물론 1~3분위(하위 60% 이내)의 P값은 0.60~0.95 수준으로 통계적 유의성이 매우 낮았습니다. 일부 중산층을 제외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에서는 출산지원금과 출산율의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분석 대상을 지자체 출산지원금으로 잡긴 했지만, 이번 연구 결과는 정부·지자체의 보편적 영유아 현금 지원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설명입니다. 우선 ‘보편 지원으로 저소득층의 출산을 독려하기엔 현금보조 규모가 너무 작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또한 ‘고소득층 입장에선 어차피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보편 지원 여부가 출산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점이 간접적으로 입증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토대로 △중산층에 현금 보조 정책을 집중하거나 △소득 수준에 따라 현금 지원 규모를 차등화해 저소득층 지급액을 늘리는 방안 중에서 선택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현금 지원 정책 구조 개편은 상당히 체감도가 높은 만큼, 정부에서도 쉽게 건드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함께 나옵니다.
1000만 원 넘은 현금 지급…‘기회비용’을 따져보자
연구진은 ‘적정한 현금 지원 수준이 얼마인지’도 함께 다뤘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이 제시한 기준은 ‘1000만 원’입니다.
우선 지원금이 일시금 기준 1000만 원으로 늘어나는 구간에선 부부 출산율에 대한 기여도가 분명히 증가했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액수가 1000만 원 수준을 넘으면 유배우 출산율에 끼치는 단위당 효과가 줄어든다는 게 연구의 골자입니다.
연구진은 “출산지원금 규모가 대략 1000만 원 수준을 넘으면서 유배우 출산율에 대한 한계효과(일정 단위 금액 추가 지원에 따른 출산율 변화)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아동수당 총액(960만 원)과 첫만남이용권(200만 원)만 합쳐도 중앙정부의 현금 지원 프로그램은 일시금 기준 1000만 원을 넘습니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0~5세에 걸쳐 중앙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편 수당이 최소 2700만 원에서 최대 4297만 2000원으로 추산된다는 연구 결과(육아정책연구소)도 있습니다. 만약 각 지자체의 현금 지원까지 합치면 규모는 더 커질 것입니다.
현금 지원이 일정액을 넘으면 차라리 육아휴직이나 보육 지원 등 다른 정책을 고도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뜻입니다. 현금 보조의 ‘기회비용’이 커진다는 뜻입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그 변곡점은 ‘1000만 원’일 것입니다.
연구진은 “적절한 지원금 규모를 결정하기 위한 분석 결과는 일시금 환산 1000만 원 수준까진 현금 지원을 늘리고, 그보다 높은 수준으로의 증액은 다른 저출산 대응 정책 혹은 잠재적인 방안의 상대적 효과성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연구진은 출산 가정의 지원금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현금 지원 정책을 통합해 단순화하고 △출생 직후 일시금 방식의 지원 규모를 늘리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합니다.
육아휴직·보육 등 다른 정책에서 돌파구를 마련하자
연구 결과만 놓고 보면 현재의 보편적 출산 지원 정책의 ‘기회비용’은 충분히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현금 보조 대신 어떤 대책을 고도화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저고위의 답안은 ‘일·가정 양립’입니다. 실제 저고위는 △육아휴직급여 150만 원에서 200만 원대로 확대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활용 독려 △남성 육아휴직 확산 등 육아휴직 쪽에 초점을 두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저출산 정책 평가 및 핵심 과제 선정 연구’ 결과도 저고위의 이 같은 전략과 맥을 같이합니다. 연구진이 2010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 급여가 월 10만 원 오르면 출산 36개월 후 노동시장 복귀율은 0.3%포인트, 출산 후 36개월 이내 재출산율은 0.4%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출산 근로자의 육아휴직 이용률은 1.8%포인트 상승하고, 희망 이용 기간도 10일 증가했습니다.
연구진이 지난 5월 25일부터 6월 15일까지 저출산 분야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옵니다. 연구진은 이들 전문가들에게 주요 저출산 정책의 필요도를 0점에서 10점 사이로 평가하라고 의뢰했는데, 이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육아휴직제도(9.3)였습니다. 유연근무제(9.1), 보육비 지원(8.7),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8.6)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보편 지원 정책 중 하나인 부모급여(6.5)는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홍석철 저고위 상임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원래 육아휴직 정책의 취지는 0~1세는 부모가 직접 돌보게 하고 2~3세 이후엔 시설·유아보육에 맡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0~1세엔 시설 보육이 어려운 데다 심리적으로도 부모와의 애착 형성이 중요하므로 이 시기의 육아휴직 급여를 높이는 게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판단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보육 지원 정책 역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입니다. 연구진은 “국공립 및 공공 보육시설 확대는 2018년 이후 유의하게 인구 10만 명 이상 50만 명 미만 중소 도시 거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와 노동 시간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보였다”며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가 출산율에 미친 효과는 인구 10만 명 이상 100만 명 미만 도시에서 모두 유의하게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육아휴직제도 확산, 보육 인프라 확충 모두 난관이 적지 않습니다. 우선 육아휴직의 경우 고용보험기금에 재원이 묶여있다는 점이 부담입니다. 당장 육아휴직급여를 늘리는 데만 7000억 ~1조 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상황이 좋지만은 않아 예산상 제약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고용보험기금에 묶여있다는 특징 때문에, 자영업자나 특수고용직 근로자 등 육아휴직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육아휴직 확대를 위해선 일단 ‘재원 마련’에서부터 범부처 협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와 저고위 사이에서 뚜렷한 답을 찾진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육 인프라 확충 역시 ‘유보통합(유아교육·보육 관리 체계 통합)’ 논의와 연계돼 있어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유보통합에는 보육교사 급여 현실화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안이 많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