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최악은 면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미국 정부가 내놓은 배터리 분야 ‘해외우려기업(FEOC)’ 조항과 관련해 “예상했던 수준”이라며 안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미국이 중국 지분이 25% 미만인 배터리 업체에 대해서는 기존대로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해 우리 기업들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덕분이다.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우선 단기적으로 합작법인(JV) 중국 측 지분을 끌어내리면서 장기적으로는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진 곳은 배터리 소재 회사들이다. LG화학(051910)·포스코홀딩스·포스코퓨처엠(003670)·에코프로 등 다수의 국내 소재 기업들은 안정적인 원료 확보를 위해 중국 기업과 JV를 설립했거나 설립을 준비해왔다.
LG화학은 현재 중국 화유코발트와 1조 2000억 원을 들여 전북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5000억 원을 투자해 경북 구미에 양극재 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중국에서도 우시와 취저우에 각각 전구체·양극재 공장 건설이 예정돼 있다. 모로코에는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연산 5만 톤 규모의 LFP(리튬·인산·철) 양극재 합작 공장을 짓는다. 이들 합작 공장의 중국 측 지분율은 국내의 경우 49%, 해외는 51%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홀딩스와 포스코퓨처엠도 6월 중국 CNGR과 니켈·전구체 생산을 위한 합작투자계약(JVA)을 체결하고 1조 5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CNGR의 니켈 정제 법인의 지분율은 40%, 전구체 생산 법인 지분율은 80%에 이른다. 포스코홀딩스가 화유코발트와 합작한 폐배터리 재활용 회사 HY클린메탈은 중국 측 지분율이 35%다. 에코프로는 중국 거린메이(GEM)와 새만금에 전구체 공장을, 인도네시아에서는 니켈중간재(MHP) 생산 공장을 짓는데 중국 측 지분율은 50%를 넘는다.
중국 측 지분율이 25%가 넘는 JV에서 생산된 광물을 사용할 경우 내년부터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국내 배터리 소재사들은 중국 지분율을 하향 조정하거나 JV의 생산 물량을 미국 외 다른 시장에서 팔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중국 기업의 지분을 추가 매입하는 것 외에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분석이다.
유럽 시장은 미국과 유사한 중국 기업에 대한 견제 정책을 준비하고 있고 중국 시장은 정부가 한국산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의 자국 내 판매를 사실상 막고 있다. 동남아 시장은 전기차 산업이 작아 소화 물량 자체가 크지 않다.
결국 국내 소재 기업들은 단기적으로는 JV의 중국 기업 지분을 추가 매입해 FEOC의 세부 규정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LG화학은 4월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IRA 리스크(FEOC)를 감수하면서까지 중국 화유코발트와 합작을 추진하는 것은 화유코발트가 원재료 확보에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며 “중국 회사 지분이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는 내용으로 FEOC가 규정된다면 화유코발트 지분을 전량 인수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포스코퓨처엠 관계자도 “광양과 캐나다의 전구체 생산 공장, 필리핀의 니켈 제련 시설 등 비중국 공급망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생산 라인 설립에 조 단위 자본이 들어가는 점을 고려하면 지분 추가 매입을 위해 수천억 원을 더 투자해야 하는 점은 부담 요인”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SK온·삼성SDI 등 배터리셀사들은 미 재무부가 포드와 중국 CATL의 합작 공장처럼 중국 배터리 기업의 우회 진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 정부는 배터리 부품과 핵심 광물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사용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할 경우 기술을 제공하는 중국 기업이 생산 전반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현재 포드와 CATL은 포드가 지분 100%를 갖고 CATL은 기술 지원과 공장 운영에만 참여하는 형태로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중국 기업이 자신들의 기술을 받아 배터리를 만들더라도 미국 기업이 생산량과 생산 기간을 직접 결정하고 생산에 필요한 지식재산권과 정보를 사용하는 등 생산 전반을 통제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IRA에 대응해 북미 시장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며 반사이익을 예상했던 국내 배터리 업계 입장에서는 이 같은 우회로 진출이 인정되면 향후 북미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특히 양 사의 합작 공장에서 생산할 배터리가 중국이 헤게모니를 쥔 LFP 배터리라는 점이 불안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양 사 계약 관계에 따라 보조금 혜택 여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국내 배터리사가 미국에 합작 또는 단독으로 짓는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은 삼원계 배터리가 대부분인데 CATL과 포드의 합작 형태가 상수가 되면 LFP 배터리 시장이 커지면서 우리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