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가 청주 특산품?'
충북 청주가 AI반도체 시장에서 핵심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반도체하면 통상 삼성전자가 있는 경기 화성시나 SK하이닉스가 있는 이천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차세대 반도체로 꼽히는 AI반도체에 한해서만큼 청주가 핵심 기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선 생산시설입니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청주공장인 M15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라인을 깔고 있습니다. 원래 이 공장은 낸드플래시 생산시설 용도였는데 HBM의 폭발적 수요 증가에 따라 생산물량 확대에 나선겁니다. 또한 SK하이닉스는 청주 M15X 공장도 신설하고 있는데 여기에도 HBM 생산라인을 설치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원래 이천이었던 SK하이닉스의 HBM 생산중심축에 청주가 가세하게 되는 셈입니다.
HBM을 바라보는 SK하이닉스 경영진의 눈길에는 그야말로 '진심'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메모리분야에서 만년 2위였던 SK하이닉스가 처음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 제품을 내놓으면서 삼성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0월 말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현시점 기준으로 내년도 HBM3와 HBM3E 생산량(CAPA)이 모두 솔드아웃(매진)됐다"고 밝혔는데요. 내년에도 생산량을 2배 이상 높여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입니다. 역대급 반도체 한파 속에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효자도 이런 효자가 없는 셈입니다.
HBM에 대한 사내 대접도 달라졌습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발표한 내년도 임원 인사에서 'AI 인프라'조직을 신설하고 이 조직 산하에 지금까지 부문별로 흩어져 있던 HBM 역량과 기능을 하나로 결집한 'HBM 비즈니스'를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조직 담당자는 또한 사장급으로 임명해 HBM 전반에 힘을 확 실어줬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HBM 도약을 후방에서 지원한 토종 반도체장비업체 한미반도체가 그 주인공입니다. 한미반도체는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는 HBM 제조과정에서 칩을 붙이는 '본딩(bonding) 공정'의 강자입니다. 한미반도체는 진작부터 SK하이닉스와 손잡고 HBM 제조에 필요한 신형본딩장비를 개발해왔으며 최근 수백억 원대 장비계약을 잇달아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한미반도체는 반도체 장비 1세대 기업인으로 통하는 고(故) 곽노권 회장이 1980년 창립한 회사인데요. 곽 회장의 본관이 바로 청주입니다. 토종 HBM 후공정 기업의 뿌리가 청주에서 발원(發源)한 셈입니다.
곽 회장은 1938년생으로 인천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이천전기공업을 거쳐 1967년 모토로라코리아에 입사한 뒤 1980년 한미반도체의 전신인 한미금형을 설립하면서 장비 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 국산화를 주도하면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공헌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실제 곽 회장이 1998년 개발한 대표 장비 '비전플레이스먼트'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HBM 필수 장비인 '듀얼 TC 본더'를 앞세워 국내 반도체장비업체 시총 1위 자리에 올라서기도 했습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청주가 HBM산업의 메카로 떠오르면 그 주변으로 각종 장비업체들도 모여들 수밖에 없다"며 "청주가 제2의 제조업 중심지로 각광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HBM의 시장규모는 오는 2027년 약 52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데요. 청주 특산품이 한국을 넘어 전세계로 이름을 떨치게 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